▲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정기훈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당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이정미 정의당 대표 단식과 여야 5당 간 선거제 개혁 합의 후 1년 만이다.

지난 23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 3+1’이 석패율제 포기를 선언하며 국회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하더니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4+1 협의체’가 비로소 합의안을 도출했다. 선거구를 현행대로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으로 하되 비례대표 30석에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지난했던 1년의 협상 과정을 겪는 사이 개혁안은 후퇴를 거듭했고 결국 비례대표 의석을 단 한 석도 늘리지 못했다. 올해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에서도 상당히 후퇴했다. 비례대표 30석에 연동률 50%(연동형 캡)를 적용하고 석패율제마저 빠졌으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했던 시민·사회단체가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애매해졌다. 합의안에 서명한 군소정당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손학규 대표는 “참담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치개혁의 문을 열었다는 측면에서는 평가할 만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51·사진)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상정에 대해 “개혁이 좌초될 수 있는 상황에서 법안 연내 상정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여야 4+1 합의안과 관련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확보 욕심으로 개혁안이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하 공동대표는 “비례대표 10석을 가져가겠다는 (여당 지도부의) 생각 때문에 (협상이) 지연됐고, 정권에도 피해를 줬다”며 “(여당의) 욕심 때문에 대의명분을 잃었고 정치개혁이라는 명분 자체가 많이 훼손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하 공동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23일 오후 국회 인근에서 진행됐다. 당일 밤 9시40분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됨에 따라 25일 전화 인터뷰를 추가했다.

“내용 아쉽지만 연내 상정은 다행”

-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연내 상정된 것은 다행이다. 올해를 넘기면 내년에 언제 선거법이 상정될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 협상 과정에서 선거구가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에서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으로 비례대표가 줄었다. 비례대표 30석에 대해서는 연동률 50%를 적용했고 석패율제가 빠졌다. 아쉽다. 그러나 연내에 법안을 상정하지 않으면 개혁 자체가 좌초될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

- 23일 야 3+1에 이어 여야 4+1 협의체 합의가 이뤄지며 정국이 급변했다. 합의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애초 선거개혁 취지에서 많이 후퇴했다. 점수를 매긴다면 올해 4월 패스트트랙 법안은 60점, 현재는 40점이다.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는다면, 글쎄…. 비례대표 30석에 한한 연동률 50% 적용으로 선거제 개혁의 효과는 40%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여당, 비례 확보하겠다는 욕심에 협상 꼬여”

- 선거제 개혁을 둘러싼 정치협상을 어떻게 봤나.
“비례대표 몇 자리를 안전하게 확보하겠다는 여당 지도부의 생각 때문에 협상이 길어지면서 지지율이 떨어졌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은 결집했다. 정당 지지율이 높아지면 비례대표 의석수 확보는 문제없는 건데 굳이 정당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10석은 확보하겠다는 것 때문에 연동형 캡(일부의석 연동률 50% 적용)이 나왔다. 그러다 논의가 꼬인 거다. 자유한국당과의 협상은 핑계다. 비례대표 10석을 가져가겠다는 생각 때문에 일이 지연됐다. 정권에도 피해를 줬다. 이 부분은 여당 지도부가 엄격하게 평가받을 부분이다. 자기들의 작은 욕심 때문에 대의명분을 잃었다. 정치개혁이라는 명분 자체가 많이 훼손됐다.”

- 야 3+1의 석패율 포기로 선거제 합의가 이뤄졌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석패율제를 지역주의 완화로 이야기했다. 지역구와 비례의 경계를 허물고 지역구에서 떨어진 좋은 정치인이 비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이다. 정책중심 정당 또는 새로운 정당은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낮으니, 그 정당의 좋은 정치인이 비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혹자들은 지역구에서 떨어진 사람이 비례로 구제되는 이상한 제도 아니냐고 하는데, 그것은 현행 선거제에서의 이야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지지가 중심이고, 당원 추천을 받아 비례대표 순번에서 상위 순번을 받아 들어가는 것이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지역구에서 한 번 검증된 사람이니까 오히려 나은 면이 있다. 비례대표제에서 석패율은 개악이 아니다. 좋은 정치인이 비례로 정책중심 정당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맥락에서 지역주의 완화를 주문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자기 정당 역사를 부정하며 석패율을 반대했다. 이런 식의 행태라면 향후 선거제 논의 자체가 어려워진다.”
 

▲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정기훈 기자>

“국회 구성 국민 축소판 돼야”

-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것 같다.
“선거제가 바뀌더라도 과도기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이대로 2024년 22대 총선은 못 치른다. 연동형이 적용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제대로 된 연동형이 아니다. 논리적 정합성도 떨어진다. 선거제 개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아예 지역구를 없애는 게 국민도 받아들이기 쉽고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지금까지 논의된 선거제는 독일 방식 즉 지역구와 비례를 같이 뽑는 방식인데, 현실적으로 의원정수 확대가 어렵다면 덴마크나 스웨덴 방식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덴마크는 175석 중 135석을 권역별로 뽑고 40석을 보정의석이라고 해서 전국단위 지지율과 의석수를 맞춘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구 253석을 권역별로 하고 비례대표 47석을 전국단위 보정의석으로 하면 유권자도 이해하기 쉽다. 권역별로 나눌 때는 시·군 단위가 아니라 최소 도 단위 국회의원을 뽑는 게 낫다. 이번 선거제 개혁논의를 보며 지역구를 둔 상태에서 비례대표를 논의하는 것에 한계가 많다는 걸 느꼈다. 유권자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덴마크·스웨덴 방식으로 가야 한다. 새로운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 바람직한 선거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은. 
“시민 삶의 입장에서 보면 선거제 개혁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 삶의 이야기가 정치에서 다뤄질 수 있느냐다. 현재는 승자독식이다. 기득권자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된다. 약자나 소수자·시민·노동자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려면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 그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최소한 받은 표만큼 의석수를 가져가야 한다. 그 방법은 비례대표제밖에 없다. 여성이나 청년·소수자·약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국회 구성이 국민 축소판은 돼야 하지 않나. 여성이 절반은 되고 청년이 30%가 되는 그런 구성 말이다. 지금의 지역구 선거에서는 여성·청년이 국회에 들어갈 수가 없다. 사실 비례성이나 표의 등가성은 이론상 중요하지만 시민 피부에 와닿는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은 두 가지다.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가 돼야 하고, 국민의 다양한 입장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논의를 통해 선거제 개혁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졌다. 이제 정치권이 흔들 수 없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 욕구를 반영해 각 정당과 시민사회가 신속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간단명료한 선거제 개혁운동을 광범위하게 해야 한다. 2022년 지방선거부터 비례대표제를 하면서 유권자들이 정당 비례대표 후보 명부에서 후보자까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개방형 명부제를 실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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