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이구아수 폭포, 우유니 소금사막과 함께 남미 여행 하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 바로 잉카의 유적지 ‘마추픽추’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되는 남미 여행이라면 보통 페루 리마를 시작점으로 잡기 마련이다. 리마에서 미스터리한 낙서로 유명한 나스카 등을 둘러본 여행자들은 마추픽추로 들어가기 위해 쿠스코에 들르게 된다. 어떤 이들에게는 쿠스코가 마추픽추를 위한 경유지일 뿐이겠지만, 내 경우는 마추픽추보다 오히려 쿠스코가 더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됐다. 어쩌면 그동안 마추픽추를 온갖 사진과 다큐 영상을 통해 접한 탓에 그 낯섦과 경이로움이 떨어져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 잡은 쿠스코는 쉽게 지나칠 그런 도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쿠스코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건 비행기 안에서도 알 수 있다. 오는 길에서 잉카의 선빵 인사를 받았다. 리마에서 비행기로 1시간20분 정도 날아오는 길. 비행기 서비스 음료로 나온 오줌색 찬란한 잉카콜라의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닝닝한 맛에 당황하는 것도 잠깐, 비행기는 벌써 착륙 준비에 들어간다. 쿠스코를 가로 막은 산을 피해 활주로에 닿기 위해 비행기는 몸체를 크게 비틀듯 한 바퀴 돌리기 시작한다. 땅에 붙어 있어야 할 쿠스코의 벽돌집들이 비행기 창문 바로 옆에 닿을 듯 보이더니 ‘쿠궁!’ 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가 땅에 붙는다. 승무원들과 승객들의 박수와 함께 비행기는 활주로에 멈춰 선다. 오늘도 무사히 도착했다는 걸 축하하는 박수라니 왠지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활주로를 걸어, 아담한 입국장으로 나오니 코카잎 바구니가 선물처럼 놓여 있었다.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잎을 하나씩 가져가라는 쿠스코만의 정겨운 인사법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나온 웰컴 드링크 역시 코카차였고, 이곳 사람들이 껌처럼 담배처럼 늘 씹는 것도 코카잎이라니 코카는 생필품 수준이라고 봐야겠다.

숙소에서 나와 처음으로 향한 곳은 아르마스 광장이다. 도시 한가운데 넓게 자리 잡은 광장과 가톨릭 성당, 그리고 식민지 통치를 위한 관청들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가 남미 대부분 도시에 남겨 놓은 흔적이기도 하다. 광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광장 위로 치솟은 투명하리만큼 푸른 하늘이다. 두터운 뭉게구름조차 그 맑고 투명한 느낌을 가리지 못할 정도다. 미세먼지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하늘과 내가 얇은 공기층을 두고 맞닿아 있다는 느낌. 어쩌면 이 하늘 때문에 다들 쿠스코에 가고, 가고 싶어 하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고도 때문에 심장이 벌떡거리는데 하늘마저 나를 ‘심쿵’하게 만드니 자칫 호흡 곤란이 올까 두렵기까지 하다.

사방팔방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의 목 좋은 곳은 어김없이 거리의 예술가들이 차지하고 있기 마련이다. 페루와 잉카제국 하면 떠오르는 노래 ‘엘 콘도르 파사’는 거리 공연의 단골 메뉴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타와 오카리나는 물론 페루 전통악기인 마라카스(작은 곤봉처럼 생겨 손으로 흔들며 리듬을 타는 악기)까지 곁들여진 소리가 투명한 공기를 타고 광장 전체로 퍼져 나간다. 내 몸이 마치 한 마리 콘도르가 돼 광장 위로 솟아오르는 것 같은 경쾌한 느낌마저 든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잡히는 지폐를 기타 박스 안에 털어 넣고 만다. 아~ 이 느낌!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게 분명하다.

광장에서 흥분된 시간을 한참 동안 보낸 뒤 밥을 먹겠다고 쿠스코 골목에 들어섰다. 쿠스코의 피부와도 같은 촘촘한 돌길을 따라 또각또각 걸어가기 시작한다. 경쾌하고 두터운 발걸음을 만들어 주는 이 돌길이 내게는 광장의 하늘 다음가는 쿠스코의 명물이다. 그렇게 고른 골목이 하필 오르막이라니! 3천미터에서 3천50미터까지 올라가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움직여 겨우 도착한 식당에서 흡연자들은 부리나케 담배 한 대씩을 꺼내 문다. 식전 담배의 참맛을 보겠다는 결기는 한 모금 빨아들이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담배가 전혀 빨리지 않는다! 있는 힘껏 빨아 연기가 조금 들어오나 싶지만,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냥 공기 반 연기 반이랄까. 게다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느라 틈을 주면 담뱃불이 여지없이 꺼져 버린다. 쿠스코는 이렇게 몇몇 흡연자들에게는 최악의 도시로 기억되고 말았다. 하지만 짭조름한 페루 맥주 쿠스케냐 한 병이 이끄는 낮술 덕분에 허망함은 금세 행복감으로 바뀐다.

코카와 구름, 돌길과 길거리 공연, 맛없는 담배와 맛있는 쿠스케냐 맥주. 이것 말고도 쿠스코에는 숨겨진 보물들이 가득하다. 어쩌면 잉카의 진짜 보물단지는 마추픽추가 아니라 이곳 쿠스코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추픽추에 마음이 급해져 쿠스코란 보물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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