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유호 기본소득당 정책팀장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한 자본주의 탄생기, 당시 영국을 날카롭게 비판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토머스 모어는 양모생산을 위해 공유지를 사용하는 농민을 몰아내고 구빈원에 몰아넣은 지주를 비판하며, 짧은 노동과 긴 여가를 누리는 새로운 사회를 제안한다. 이로부터 ‘유토피아’는 자본주의 너머 새로운 사회를 희망한 이들이 가진 오랜 열망이었다. ‘디지털 공유지’에 새로운 인클로저가 벌어지는 지금, 유토피아라는 상상이 다시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빅데이터가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오늘날 자본은 개인이 단말기와 사물인터넷을 통해 쏟아 낸 정보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수집하고 빅데이터로 가공해 새로이 부를 창출한다. ‘초연결시대’라는 광고카피는 빅데이터·인공지능 등 기술발전이 가져올 변화를 잘 그려 낸다. 빅데이터 활용은 인공지능 발전에 영향을 주고, 다시 전 산업 부문에서 빠르게 인간을 대체해 간다.

하지만 빅데이터 구성에 기여한 개인은 새로운 부에 대해 어떠한 몫도 받지 못한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생산성 확대로 얻은 부 대부분은 자본이 독점하고, 빅데이터 구성에 기여한 다수는 새로운 부를 조금 나눠 받는 대신, 보다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자동화 기계가 모두 대체하고 대신 크라우드 노동(crowd work) 또는 주문형 앱노동(on-demand work)이라는 보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등장한다. 변화는 플랫폼기업을 넘어 생산영역 전반과 소비영역 전반에 이른다. 세상이 데이터 기반 경제로 변화한다.

21세기 구빈법

정부는 데이터 기반 경제에 따른 불평등 확대에 근본 대책 대신 근로장려금(EITC) 확대, 단기 저임금 공공일자리 확대를 대책으로 냈다. 동시에 노동자 스스로 IT 교육 등을 통해 변화하는 산업에 알맞은 노동력이 될 것을 독려한다. 더 이상 성장이 일자리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났으나, 여전히 일자리 중심 분배 정책을 고집하는 정책은 공유지에서 쫓겨난 농민을 빈곤 구제 명목으로 강제노동시킨 당시 구빈법과 다를 게 없다. 이른바 ‘현대판 구빈법’이다.

현대판 구빈법을 없애는 일은 ‘공유지’를 다시 모두에게 되돌려 주는 방법뿐이다. 기본소득당은 토지·빅데이터 등 소유를 특정할 수 없는 사회의 부를 다시 ‘공통부’로 설정해 모두가 배당을 받자고 제안한다.

특히 데이터 기반 경제로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 빅데이터 소유권 문제는 앞으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이며, ‘모두의 몫’이라는 답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아직 공통부 배당론에 기반한 데이터 배당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플랫폼 자본에 과세하는 방식, 플랫폼 자본이 만든 다양한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권리보장 논의는 데이터 배당 도입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최근 데이터 기반 경제 전환에 따라 전체 주식시장 변동에 사회 공통지분권을 설정하고 이를 배당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공통부를 다시금 우리 모두에게 돌려주는 대안 중 하나로 구체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질문

기본소득을 향한 사회적 지지 확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기술발전으로 일자리가 줄고 불안정 일자리만 늘어나는 사회에서 일자리 중심 정책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다수가 삶에서 체감한다. 이제는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넘어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논의가 필요하다. 기본소득 도입이 단순히 불평등 개선을 넘어 어떤 사회를 만들지 질문을 해야 할 때다.

여기서 토머스 모어 이래 많은 이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를 다시 불러본다. 누군가는 ‘6시간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유토피아 사회’에 “일을 적게 하면 생필품이 부족하지 않겠는가?”라고 질문한다. 유토피아 사람은 반문한다. “오늘날 세계 전체 인구 중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라”고. 기본소득당은 기술발전을 멈추는 게 아니라 기술발전 속에서 모두가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자고 제안한다. 기본소득은 시대 변화를 어두운 ‘디스토피아’ 대신 모두의 ‘유토피아’로 만들 주체적 대안이다.

데이터 기반 경제시대, 전 사회적 배당권 확보로 생계 수준 이상 기본소득을 보장할 때, 우리는 현대판 강제노동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는 분배 문제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유, 그리고 분배 더 나아가 인간과 노동 간 관계 맺음에 새로운 방식을 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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