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주제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노동법원 설립 여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이미 만들어질 것을 기정사실로 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 대법원에서 서울대 노동법연구회·법원 노동법분야연구회·서울중앙지법·노동사건실무연구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2019년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필자도 우연한 기회에 학술대회를 방청할 기회를 얻었다. 대법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난 세월에 비해 노동환경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흘러간 노래 반복이 아닐까 하는 짐작만 했다. 그런데 반전이었다.

법원은 노동법원 도입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이종훈 판사(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법관 318명 중 73.6%(234명)가 "노동법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적지 않은 숫자다. "노동사건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별도 전문법원에서 특수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거나 "현재 일반법원은 노동사건을 처리하기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다양한 찬성 이유가 있었다. 현장 노동자들이 그동안 크게 느끼지 못한, 변화하는 법원의 솔직하면서도 적극적인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노동법원 설립에 관한 얘기는 2000년 초부터 시작됐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특히 참여정부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가장 원하는 사법정책 중 하나였다. 이때부터 몇몇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관련 법률안이 제안됐다. 사실 최근에는 노동법원이 주목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법원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노동법원 설립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과 대다수 법관들이 노동법원 설립 필요성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마당에 이제 설립론이 확실한 우위에 섰다고 평가할 만하다.

“회생법원과 특허법원도 설립됐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언이다. 알랭 쉬피오 교수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법은, 예를 들면 자유와 평화 등과 박애의 원칙에 의해 통치되는 공화국과 같은 허구의 세계에 산다. 그러나 기술과 마찬가지로 법은 실제의 세계를 상대하며, 따라서 실제 세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묘사를 인용하면서 노동법원 설립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법 이행제도는 ‘실제 세계’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단순 기술적인 판단만 필요할 뿐인 특허법원이 이미 설립됐고, 기업 요구를 크게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회생법원까지 들어왔다면 노동법원은 벌써 설립되고도 남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한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세계를 반영하는 법원이 필요하다는 도재형 교수의 의견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다만 노동법원을 도입하는 방식이나 형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노동법원 위상과 재판부 구성, 다룰 수 있는 사물관할 문제, 노동조합 대리권 인정 여부 등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쟁점이 없었다. 재판부 구성에 관해서는,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이른바 노사가 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참심제가 적극적으로 제안됐다.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노동자의 온전한 참여가 보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뜨거웠던 시간은 노동위원회와 노동법원의 관계 설정에 관한 토론이었다.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을 노동법원으로 넘기자는 의견과 현재의 노동위원회를 그대로 두면서 노동법원을 설립하자는 주장이 맞섰다. 각국 입법례에서 노동위원회는 조정기능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최대 8차례 판단을 받아야 하는 등 조속한 분쟁해결이라는 노동사건 해결의 본질적 기능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 맞섰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인 것은 맞다.

필자로서는 노동법원 설립과 노동위원회(특히 중앙노동위원회)의 폐지 및 기능조정이 어떤 논리적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노동법원 설립 전제요건이 노동위원회 축소 또는 폐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양한 법·제도적 근거를 들 수 있지만, 최근까지 노동위원회가 노동자들을 위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통계로 확인된다. 노동위원회를 찾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노동위원회가 한 판단은 거의 대부분 법원에서 그대로 인정받는다. 노동위원회가 노동자들을 위해 제도개선에 힘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노동법원과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의제로 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이날 학술대회를 보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오랜 기간 노동법을 연구한 석학의 눈에서는 이만한 공감대라면 사회적 대화로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경사노위는 이런 의제를 다루라고 설립된 곳 아니겠나.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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