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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만 억울한 중대재해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2월2일 충북 청주 오창읍의 한 필름제조업체인 더블유스코프코리아 공장에서 유독가스인 디클로로메탄이 유출됐다. 그로 인해 36세와 28세의 청년노동자가 질식사고를 당했다. 그중 한 명은 뇌사 상태에 빠진 중대재해였다. 디클로로메탄은 뇌와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 충청북도가 2년 연속 발암물질 배출 1위를 기록하게 한 화학물질이기도 하다. 올해만 해도 충주·제천·옥천에서 질식사고를 비롯해 화학물질 누출·폭발로 인한 중대재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관할지방노동청은 해당 사업장이 어떤 물질을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사고가 난 이후에 파악을 했다.

노동자가 죽어야만 중대재해로 인식하는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인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하지만 노동부 청주지청은 사고를 중대재해가 아닌 일반재해 사건으로 처리하고 있다. 중대재해 개념과 기준을 협소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사망과 유사한 상태인 뇌사 등에 대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중대재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심지어 중대재해 기준 2호와 3호에 대해서는 거의 판단하지 않고 있다. 더블유스코프코리아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노출사고로 인해 2명의 노동자가 전신화상과 디클로로메탄 중독으로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3개월 이상 요양에 대한 검토나 판단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중대재해를 별도로 규정하고 처리 절차를 만든 이유는 해당 사고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 기준을 협소하게 판단할 경우 동종·유사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게 돼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피해 가족의 진상규명 요구마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노동부 청주지청 면담을 통해 뇌사판정을 받은 36세 노동자의 가족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서 일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해 가족이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함께 사고현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기업이 출입을 거부하기 때문에 현장을 확인하게 할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이처럼 피해 가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조차 사고발생 책임주체인 기업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사고현장 확인 거부하는 속내

올해 4월 입법예고된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작업중지의 범위·해제 절차 및 심의위원회 운영기준을 축소하는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안이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노동부 청주지청은 사고를 일반재해로 규정했기 때문에 축소되는 중대재해 관련 규정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사고발생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재해자의 휴대전화를 통해 사고원인을 유추해 보면 설비가동을 중단하지 않은 채 점검과 청소작업을 했고, 밀폐공간 작업에 따른 규정(교육, 환기 및 보호구 지급, 감시인 배치 등 2인1조 작업, 지하실 작업규정, 긴급구조 등)을 준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사고현장을 확인해 주지 않는 이유는 사고의 원인과 문제점이 드러나거나 공론화되지 않고 조용히 묻히기를 원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더구나 해당 기업은 충북지역을 발암물질 배출량 1위로 만든 디클로로메탄 사용량이 가장 많았던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고는 기업에 큰 부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의 원인과 문제점이 공론화되지 않기를 바랄 수 있다. 하지만 회사 이미지 타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사건 원인을 규명하지 않으면 또다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중대재해 개념 확장하고 사고 드러내야

중대재해는 심각한 사고로 인해 회복할 수 없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재해 혹은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고로 규정한다. 사고 원인을 규명해 동일·유사재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법 취지와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기 위해 중대재해 개념 확장이 필요하다. 특히 화학사고의 경우 해당 사업장뿐 아니라 주변 사업장과 인근 주민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10명 이상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한 개 사업장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 사건으로 인한 피해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로 인한 피해자들은 대부분은 ‘말’을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은 노동조합이 나설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중대재해는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피해자를 대신해 유족이나 피해자 가족이 나설 수밖에 없지만 가족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고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고초를 겪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은 피해자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 근무했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및 기타 관련 법령 등을 충분히 알 수 없다. 피해자 가족과 가족이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사고현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져야 사고 진상을 밝히고 재발방지를 위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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