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동(勞動)이 갖는 첫 번째 의미는 고통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허신의 <설문해자>(AD 100년)는 노(勞)를 “힘을 쓰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동(動)의 옛 글자는 죄를 짓거나 전쟁에 져 노예가 된 자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쪽 눈을 칼로 그은 모습을 상형한 것으로서, 그 원래 의미는 노예 또는 노예의 고통스러운 일을 뜻한다. 한편 근로(勤勞)의 근(勤)은 노(勞)와 같은 의미다. 이렇듯 노동·근로는 어원상 수고로움과 고통을 의미한다.

서양의 언어에서도 다르지 않다. 어원상으로 영어의 레이버(labour), 독일어의 아르바이트(Arbeit), 불어의 트라바이(travail) 등은 모두 고통으로서의 노동을 의미한다. 특히 노동을 뜻하는 불어 트라바이(travail)는 라틴어 트리팔리움(tripalium)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것은 원래 고문 기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결과 이 말은 고통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사람은 노동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람이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라 “작업”이라고 불렀다. 어원상으로 영어의 워크(work), 독일어의 베르크(Werk), 불어의 외브르(œuvre) 등은 모두 자유로운 사람이 하는 일, 작업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작(作)이라는 말이 작품(作品)이나 창작(創作) 등에서 보듯이 자유롭고 명예로운 일을 가리키는 데 주로 쓰인다. 작(作)의 이러한 용법은 선불교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수행자들이 노동하지 않고 탁발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을 계율로 삼았던 석가모니 당시의 인도 원시 불교와 달리, 중국 당나라의 선종에서는 승려 집단의 규모가 거대해 의식주를 탁발에만 의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승려들의 노동을 인정할 필요가 있었다. 출가자들의 노동에 대한 교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백장선사(749~814)는 노동을 선(禪)의 일환으로 승격시켰다. <백장청규>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규칙이 그것이다.

세속적 생존 수단으로서의 노동과 종교적 수행 또는 영적 활동으로서의 노동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은 기독교의 알레고리를 통해서도 흥미롭게 표현되고 있다. <성서>에는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노동하는’ 신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일곱째 날에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는 일을 모두 마치고 안식하셨다.”(창세기 2장2절) 혹자는 이 마지막 구절에서 노동하는 신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까지) 휴가를 즐기는 신의 모습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휴식하는 신의 모습은 그 아들인 예수에 의해 반박된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복음 5장17절)

인간은 (언어로써) 신의 창조 노동에 참여한다. “하느님이 온갖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가 어떻게 부르는지 보셨다. 아담이 생명 하나하나에 불러 준 것이 그대로 그 생명의 이름이 되었다.”(창세기 2장19절) 그러나 아담이 하와의 말을 듣고 먹지 마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신이 아담에게 말한다. “너는 평생토록 수고해야 먹고 살리라.”(창세기 3장17절) 노동의 형벌이 내려진 것이다. 그리고 여자에게 내려진 벌은 잉태와 출산의 고통이다. “너는 고통 속에 아기를 낳으리라.”(창세기 3장16절)

그런데 이 출산의 고통을 나타내는 서양어도 바로 레이버(labour) 또는 트라바이(travail), 즉 노동이다. 생산의 고통(産苦)은 곧 출산의 고통(産苦)이다. 인간의 노동은 잉태된 것을 출산하는 행위다. 잉태(conception)는 착상(conception)과 같은 말이다. 새로운 생명을 품는 것과 새로운 생각을 품는 것이 모두 잉태고 착상이다. 인간의 노동은 머릿속에 착상된 것을 물질세계에 실현시키는 행위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노동은 정신노동이다. 잉태되고 착상된 것은 하나의 개념(concept)이다. 노동은 개념을 출산하는 것이다. 빵을 만드는 노동과 아이를 출산하는 노동은 모두 하나의 개념을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의 가장 시원적 의미를 구현하는 것은 여성의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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