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호 공인노무사(삼현공인노무사)

필자는 얼마 전부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불공정행위신고상담센터에서 단시간 전문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쉽게 말해 파트타임 계약직이다. 그런데 최근 예술인신문고 신고인들이 부쩍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노동부에 갔더니 예술인복지재단을 안내하던데요.” “예술인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던데요.” 자영예술인들이 아니라 연극이나 뮤지컬 등 공연계 예술인들이 하는 말이다. 고용노동부가 왜 이들의 사건을 접수조차 하지 않고 내치는 것일까? 예술인복지재단에서 불공정행위(수익분배 거부 등) 사건을 처리하지만, 임금체불이 명백하다면 굳이 먼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이 체당금으로 임금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얼마 전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내려졌다. 영화스태프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사실 대법원 판결문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1심 판결부터 언론보도1)를 추적해 봐야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그 대상이 된 영화가 2017년 여름에 언론을 달궜던 <아버지의 전쟁>이었다. 사건 경위는 영화제작이 중단돼 임금이 체불된 사건이었다. 노동부에서 체불임금확인원을 받아서 법원 지급명령을 거쳐 소액체당금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검찰의 약식기소에 영화제작사측이 정식재판을 청구해 형사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측은 영화스태프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촬영시간 및 촬영장소를 영화제작사가 결정한다." "사전에 정해진 총액을 지급받았을 뿐 달리 개인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취하지 않았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이 재판 과정에서 공방을 겪었다. 다행히 1심과 항소심에서 사측 항변이 인정되지 않아 벌금형이 부과됐고,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필자는 해당 형사사건을 노동부 진정단계에서 담당했다. 계약기간은 분명히 정해져 있었으나 일반적인 근로계약서와 달리 계약금·잔금으로 임금항목이 기재돼 있었고, 촬영시간 및 장소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았다. 만약 영화스태프 표준계약서를 작성했다면 대법원까지 가는 형사사건이 될 수 없었다. 영화스태프의 근로기준법상 법적 지위를 노동조합 설립 이후 만 14년 만에 대법원에서 확인받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그동안 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에서 영화스태프의 근로자성이 큰 문제 없이 인정됐으며, 임금을 안 준 제작사가 검사의 기소에 대해 이번 사건처럼 적극적으로 항소와 상고를 제기한 전례가 없었다.

노동부에서 예술인을 내친 민원실 공무원들의 태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일단 “예술인?” “연극배우라고?” “근로자 맞아?” 하는 의문을 품다가 이들이 내미는 계약서를 보고, 그 의문은 확신이 돼 “근로자가 아닌데, 예술인복지재단으로 가 보세요. 법원으로 가 보세요”라고 말한다. 올해 4월 MBC 보도2)에서도 이런 상황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술인들도 헌법상 재판청구권과 청원권을 동동하게 누릴 수 있는 국민이며, 이들이 노동자인지 아닌지는 사실조사를 해 봐야 한다. 근로자 의제를 해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법 위반인지 살펴보고 시정을 하거나 처벌을 해 달라는 것인데, 노동행정기관에서 이들의 권리행사는 계속 제약당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사건을 반려할 수 없으면, 사건을 접수조차 하지 않는 것이 공무원사회 불문율이라고 하는데, 예술인들이 왜 이런 차별을 계속 받아야 하는가? 앞서 언급했던 <아버지의 전쟁> 영화스태프들 중에는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접수한 후 아무런 조사 없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취하서 제출을 요구받은 이들도 있었다. 유네스코는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에서 “회원국은 생산이윤 분담의 형식으로 된 이윤분배 제도가 예술가의 실질소득과 사회보장 자격에 관한 예술가의 제 권리를 불리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예술가들의 제 권리를 보호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들은 그동안 ‘예술’은 종속노동에서 벗어나 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사용종속관계에 관한 관념’ 역시 근대적 종속노동의 틀 속에 머물러 있었다. 대법원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의 사용종속관계의 표지를 “직접성”에서 “상당성”으로 옮겨 오는 데 대략 반세기가 걸렸다.

그 어느 누구도 교수·기자·방송사 피디에게 “당신은 임금을 목적으로 일을 합니까? 돈을 위해서 일을 합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이들은 헌법상 노동권 외에도 학문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까지 보장받고 있다. 예술가도 직업이다. ‘직업의 종류’를 불문한다는 법 내용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예술가들 역시 근로자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출입문을 열어 줘야 한다. 예술인 근로자성에 대한 올바른(유연한 것도 아닌) 해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창의적인 노동의 특성은 근로자성 인정 표지에서 부정의 방향이 아닌 중립의 방향으로 작동돼야 한다.


<각주>
1) 매일노동뉴스(2019. 6. 4.), 민중의 소리(2019. 6. 21.), 미디어오늘(2019. 10. 21.) 등 보도내용 참고
2) MBC 연속보도 [장미와 빵] 50억짜리 뮤지컬 올리면서 … “임금 줄 돈은 없다”(2019. 4. 10.), 돈 못 받는 예술인들 … 노동부도 공정위도 “방법 없다”(2019. 4. 24.) 등 보도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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