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영 청년유니온 교육팀장

2010년에 출간된 책 <거대한 운동에서 차이의 운동들로>의 서장에는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의 사회운동 변화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다. 이 글에 따르면 한국에서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화가 이뤄진 이후 '민주화의 실현'과 같은 거대한 마스터 프레임으로 사회운동조직을 묶어 내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사회운동조직은 보다 다양한 가치를 내세운 운동‘들’로 분화했는데, 이들이 갈등과 균열의 방향이 아닌 차이의 연대로 나아가는 것을 과제로 남기며 글은 끝이 난다.

이 책이 출간된 2010년 청년유니온이 설립됐다. 10주년을 앞두고 청년유니온이 만들어 간 역사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일의 일환으로 청년운동 생태계를 분석하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사회운동 : 청년 활동·운동 생태계 네트워크 분석’이라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에서는 사회 연결망 분석을 통해 2011년·2015년·2019년의 연결망을 그려 내고 이 연결망이 그 사이에 있었던 운동영역의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분석했다. 지난 10년은 등장·성장·확장의 3개 시기로 나뉜다.

2010년 청년유니온이 설립됐을 때 청년단체로는 청년유니온이 유일했고 청년유니온의 연대는 주로 기존 노동운동조직과 시민사회운동조직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2011년 주거영역에서 ‘민달팽이 유니온’이, 금융·부채 영역에서 2013년 ‘토닥토닥협동조합’이 잇따라 설립되면서 서서히 ‘생태계’라고 부를 만한 운동의 영역으로 성장해 나갔다. 청년운동 초기에 설립됐던 주요 청년운동 조직들은 청년단체 간 연대를 먼저 시도했지만, 2019년 연결망에서 확인된 바에 의하면 청년단체 간 긴밀한 연대가 확인되는 동시에 각 단체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시민사회영역과 연대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2011년 8건이었던 연대활동은 2015년 93건, 올해 212건이 됐다. 청년운동조직은 이제 하나의 의제를 두고 청년단체 연대체를 꾸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2015년 연결망에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위한 청년학생단체연석회의’, 2019년 연결망에서는 ‘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청년단체 연석회의’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양적 성장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더 눈에 띄는 건 질적인 ‘확장’과 그 확장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청년운동 의제는 노동에서 주거·부채·복지·교육 문제로 확장됐고 나아가 최근 들어서는 전통적으로 ‘청년’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성평등·환경·건강·다양성 등의 주제로 범위가 확산했다. 이들은 각자 의제 영역에서 활동하면서도 ‘청년’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연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청년운동은 ‘청년’의 의미를 바꿔 나갔다. 설립 시기 청년운동에서 바라보는 ‘청년’ 또한 사회에서 바라보는 좌절하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10년의 과정을 거치며 ‘청년’은 이제 피해자 위치에만, 정책수혜자 위치에만 놓이지 않게 됐다. 이제 서울시를 포함해 전국 각 지역에서 이뤄지는 청년정책거버넌스에서 청년들은 정책을 제안하고 심지어 지자체 예산 편성까지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제안되는 청년정책 중에는 청년이 제안했지만 시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정책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제 청년은 ‘정책의 대상’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최전선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이자 ‘사회변화를 추동하고 만들어 가는 주체’의 자리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정책은 ‘(불쌍한) 청년을 지원하는 정책’에서 ‘청년이 만들어 나가는 미래 사회의 디자인’이 됐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직돼 있고 그 경직된 사회는 청년에게 자리 하나 주는 것으로 모든 청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회 하나를 뚫고 솟아난 청년들은 대상화된 청년에 머무르는 대신, 청년으로 시작하는 더 큰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더 이상 청년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사회 문제를,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들어 낸 이러한 변화가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사회운동’으로서 청년운동의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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