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달 기자

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애니메이션 <태일이> 제작을 비롯해 열사를 기리는 다양한 작업이 곳곳에서 이뤄진다. 열사의 고향 대구 시민사회도 분주하다. 시민 모금운동으로 열사가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을 매입해 기념관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내년 11월 50주기에 맞춰 대구전태일기념관을 연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매계약을 최근 완료했다.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를 추모하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조영래 변호사 역시 대구 출신 인권변호사다.

추모사업을 이끌고 있는 단체는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다. “전태일의 죽음을 기억하고,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평생을 기꺼이 힘겨운 노동자들의 곁을 지키고 힘없는 이들의 인권을 변호한 이소선과 조영래처럼 대구시민이 나서서 지금 또 다른 전태일의 친구가 되자”(창립선언문)는 취지로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단체다.

정은정(50·사진) 전태일의 친구들 부이사장을 만나 기념관 사업 진행 상황을 들었다. 정 부이사장은 대구지역 일반노조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대구노동세상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는 대구 달서구 본동 매일노동뉴스 영남본부에서 이뤄졌다.

-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전태일의 친구들은 대구전태일기념관 건립을 목표로 2019년 3월26일 출범했다. 현재 대구 남산동에는 전태일 열사께서 열다섯 살 무렵이던 1963년에 1년 남짓 살았던 집이 남아 있다. 이 시절 열사는 집 근처에 있던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를 다니며 배움의 열망을 채워 나갔고, 훗날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추억했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시민이 모은 기금으로 이 집을 매입해서 기념관을 건립하고자 한다. 전태일의 삶과 정신은 대구의 소중한 유산인데도 지금까지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지방정부도 시민사회도 책임이 있다. 이제라도 시민들이 뜻을 모아 전태일의 고향으로서 대구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 전태일기념관 건립 계획은 얼마나 진척됐나.
“3월 출범 이후 꾸준한 홍보를 통해 일정한 기금을 모아 9월17일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내년 2월 말에 중도금을 납부하고 6월에 매입을 완료하고자 한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 50주기가 되는 11월에는 기념관을 완공할 예정이다. 이 집에는 현재 주인인 최용출(69) 선생이 54년간 살았다. 집이 워낙 낡아 그대로 살기가 어려웠지만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69) 선생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떠나면 역사적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불편을 감수하고 계속 살고 있었다. 전태일 열사께서 사셨던 바깥채는 사라졌고, 주인 부부가 살았던 본채는 남아 있는 상태인데 어떻게 복원해 갈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 한국 현대사에서 전태일 열사는 어떤 의미인가.
“전태일은 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그늘에서 그늘로 옮겨 다니면서도 자신의 삶에 갇히지 않고 자기보다 더 여리고 약한 존재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했다. 하루하루 벌이에 급급한 평화시장의 일개 노동자일 뿐이면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한의 노동조건마저 지켜지지 않던 사회 현실의 변화를 추구하며 제한된 개인을 다른 존재로, 전체 사회로 확장해 나갔다. 이것이 전태일 정신이며, 그의 죽음 이후 우리가 따라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개별로, 육체로 개인의 삶을 살지만 다른 존재들에 공감하고 주변과 연대하며 삶을 확장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꼭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우선은 기금 모금에 많은 대구시민과 각지의 뜻있는 분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구지역 노동자들 참여가 아직은 부족하다. 이 사업을 더 많이 알려서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리고 기념관이 완성되면 당시 전태일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과 함께 현재 취약한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사회적으로 대안을 찾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꾸며 가고 싶다. 청소년과 청년들과 함께 노동인권을 배우는 공간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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