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지난 4일 오후 1시, 어느 이름 모를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공장에서 사망했다. 금형을 이용해 금속을 가공하는 프레스기에서 정비작업을 하던 중 무게 700톤짜리 프레스기에 상체가 깔려 머리와 상체가 짓눌려 죽음에 이른 것이다. 감히 상상조차 안 되는 무게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금속 기계에 눌린 그는 8시간에 1명, 하루에 3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는 한국에서 두부와 상체가 협착돼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뒤늦게 고인이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동포 이주노동자, 50대 김아무개씨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주노동자 사망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포털사이트에 ‘이주노동자 사망’으로 검색만 해 봐도 어렵지 않게 사고 보도를 접할 수 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이달 3일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받은 내·외국인 산업재해 현황자료를 보면 올해 1~6월 산업재해로 사망한 이들 465명 중 42명(약 10%)이 이주노동자였다. 과거 통계를 보더라도 산재사고 사망자 중 이주노동자 비율은 2015년 10%, 2016년 7.7%, 2017년 9.3%, 지난해 11.7% 등 10%대를 오르내린다. 산재사망 노동자 10명 중 1명이 이주노동자인 현실이다. 1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추산하는 이주노동자 규모를 고려할 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은폐되는 산재사고 사망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언론 기사만 보더라도 지난달 16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의 한 건설자재 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가 스티로폼 파쇄기에 몸이 끼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추석연휴를 이틀 앞둔 9월10일 경북 영덕 오징어 가공업체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작업하던 탱크 내 유해가스에 질식해 4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심지어 이 업체는 안전보건공단에서 ‘클린 사업장’으로 인증받은 곳으로 밝혀져 인증방식 문제가 제기됐다. 언론 기사에 사고 소식이 전해지는 경우는 그나마 한국에서 자신이 어떤 사건으로 다치거나, 아프거나, 죽었는지 기록을 남길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경험은 이 지면에 다 담을 수조차 없다.

이주노동자 산재사고는 진상을 규명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이번 사고 역시 경기도 평택의 포승공단에서 발생한 사고 소식이 지역에 전파돼 이를 확인한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이 사건 대응을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해 고인 신원부터 파악하고자 했으나, 망인이 ‘이주노동자’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고인 장례식장도 알 수 없어, 유가족 곁에서 위로하거나 애도의 마음조차 표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사고발생 당시의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가 더욱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뒤늦게 사건이 언론을 통해 일부 드러났을 뿐이다.

언론에 기대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경찰 조사 결과였다. 경찰은 사고원인으로 2인1조로 함께 작업을 했던 동료가 고인이 정비를 마친 후 기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않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설비를 작동시켰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문제 발생 원인을 동료 작업자의 실수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것, 대개의 산재사망 사고 원인을 개인 부주의로 지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이 사고에서도 나타났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프레스작업은 단시간에 많은 힘을 가해 가공하고, 위험 부위에 근접해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작업에 비해 노동자 신체에 미칠 위험성이 큰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안전사고뿐만 아니라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률도 높다. 게다가 대개 소규모 사업장에서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안전대책이 미흡하다. 이를 고용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제조업 10대 사망사고 위험설비로 꼽힐 정도로, 그 위험이 익히 알려진 프레스기에 마련됐어야 할 철저한 안전대책이 부재했던 것이 사고 발생의 근본원인이 아닐까.

일상적인 설비의 안전점검 활동, 설사 작업자가 기계를 가동하더라도 신체가 한계선에 들어갔을 때 설비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방호대책(안전센서 등), 위험성평가, 관리자 입회와 감독하에 이뤄지는 정비작업 등 최소한 법에서 요구하는 준수 사항이 지켜졌다면 중대재해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또한 노동자가 일련의 안전조치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비를 하지 못하겠다고 업무를 거부·회피하는 작업중지권이 보장됐다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해 본다. 수많은 만약을 되뇌지만 이런 가정이 현실이 됐다면, 먹고살기 위해 한국을 찾은 50대 동포 노동자가, 자신이 매일 만지고 다루던 공장 기계에 끼여 죽는 허망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1년 전 12월10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 하청노동자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김용균과 어느 이름 모를 노동자의 죽음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이름 모를 수많은 노동자를 본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신년사에서 밝힌, 2022년까지 산재사망 노동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기간이 2년 남았다. 어디서부터 노동자의 산재사망 문제를 풀어 나갈 것인지 그 해답은 바로 이름 모를 노동자들의 죽음에 있다. 어디에 귀를 기울일 것인지 문재인 정부가 판가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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