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을 거쳐 도착한 방비엥은 라오스 최고의 액티비티 관광지다. 방비엥에서 가장 핫한 곳은 역시 카페 거리. 몸이 반쯤 파묻히는 푹신한 앉은뱅이 소파에 기대 누운 채, 라오 비어 맥주 한 잔에 연거푸 담배를 피워 대는 젊은 여행자들의 모습에서 이곳 방비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늘어져 있다 체력이 올라오면 남송강으로 가서 카약킹이나 튜빙을 하기도 하고, 블루라군을 찾아가 다이빙을 즐기기도 하는 것. 그렇게 한껏 방전하고 저녁이 되면 다시 이곳 카페 거리로 찾아드는 것이 공식이다. 역시…. 젊어서 놀아야 한다. 카페 거리를 지나 옆길로 새서 강을 건너가 보기로 한다. 샛길을 빠져나오니, 강을 가로질러 놓인 사람 둘이 스쳐 지나갈 정도로 아담한 대나무 다리가 눈길을 먼저 붙잡는다. 우리네 강원도 어디선가 볼 수 있을 섶다리 같은 풍경이다. 다리 건너로 보이는 풍경도 또 한 번 눈길을 끈다. 언덕보다 조금 더 높은 산들이 농담이 깃든 산수화처럼 편안하게 펼쳐져 있다. 어느 봉우리 하나 모난 것이 없고, 튀는 것도 없는 모습. 라오스 어디를 가도 이런 풍경, 이런 느낌, 이런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라서 그런지 그리 깊지 않아 보이는 강물에서 멱을 감는 까까머리 아이들의 모습에 씨익 미소가 흘러나온다. 해가 뉘엿뉘엿 언덕 같은 봉우리들에 걸릴 때쯤, 강 아래쪽에서 잔잔한 먼지를 일으키며 소 떼가 올라온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소년 둘이 막대기 하나씩을 쥐고 소 떼를 슬렁슬렁 몰고 지나간다. 역시 라오스스럽다. 그렇게 강을 한 바퀴 에두른 뒤, 다시 강을 건너 카페 거리 쪽으로 내려온다. 길가에서 먹거리를 파는 이들이 눈에 띈다. 둥글고 넓은 팬에 달걀을 두르고, 바나나를 잘라 넣은 뒤, 연유와 초코시럽을 잔뜩 뿌려 넣어 만드는 로띠 팬케이크의 달콤함을 못 본 척 지나가기는 어렵다. 타코야키를 만드는 판보다는 조금 더 큰 동그란 판 안에 코코넛 반죽을 넣어 은근한 숯불에 구워 만드는 코코넛 빵의 심심하면서 구수한 맛도 입맛을 돋운다. 은근한 불빛으로 화장하고 손님을 꼬드기는 카페에 잠입해 술 한잔하는 것도 좋고, 로띠와 코코넛 빵을 사 들고 숙소에서 가볍게 한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빵 맛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라오스의 숯불이다. 화르륵 타오를 정도로 세지 않고, 불꽃 색깔이 강렬하지도 않다. 옅고 깊은 붉은 기운이 달구듯 불기운을 위로 올려 보내는 라오스의 숯불은 아주 깊고 은근하다. 뭔가 이 사람들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여행자의 기분 탓일까?

방비엥에서 고난의 버스 길을 여덟 시간 남짓 달리면 가장 라오스스러운 도시 루앙프라방에 도착한다. 루앙프라방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주택들(지금은 주로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나 식당으로 사용되는)과 라오스의 전통적인 남방불교 사원이 함께 터를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루앙프라방에 들어오면 시간을 지금부터 50년 이상은 되감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여행자들은 그만큼 느긋해지기 마련이다. 앞서 지나왔던 방비엥에서처럼 이런저런 액티비티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어지니 그저 어슬렁거리는 게 최고의 미덕이 되는 곳이다. 루앙프라방에서의 하루는 비교적 단순하다. 부지런한 이들은 동이 트기 직전에 열리는 스님들의 탁밧(탁발) 행사에 참가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퉁퉁 부은 눈을 반쯤 뜨고 거리로 나가 보면 벌써 많은 동네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 스님들을 기다리는 모습과 마주치게 된다. 다들 조그만 대나무 바구니 하나에 찐 밥과 과일, 반찬 같은 걸 담아서 말이다. 분홍색 법복을 깔 맞춰 입은 스님들이 줄지어 지나가면, 그네들이 들고 있는 쇠그릇에 준비해 온 음식을 조금씩 나눠 담으면 된다. 스님들 주변으로는 동네 아이들이 또 다른 바구니를 들고 따라붙는다. 쇠바구니가 제법 차오른 스님들은 자신들의 바구니에서 음식을 꺼내 따라오던 아이들에게 나눠 준다. 일종의 사회적 공양 시스템이 작동하는 셈이다. 여행자와 주민들의 손에서, 스님들을 거쳐, 배고픈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게로 바구니와 바구니들이 이어지는 그런. 탁밧을 마치고 돌아와 한잠 더 때린 뒤,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사원과 동네를 돌며 한낮을 보낸다. 그중에서도 와트 시엥 통(Wat Xieng Thong) 사원에 있는 ‘생명의 나무’라는 금색 찬란한 벽화는 앞에서 한참을 멍 때리게 하는 신묘한 힘이 있다. 해 질 녘이 되면 동네 뒷산인 푸시산에 올라 강 너머로 지는 해를 본다. 라오스에서 누군가를 만날 일이 있다면 해 질 녘 푸시산 꼭대기로 장소를 정하면 어긋날 일이 없다. 해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공복은 산 바로 아래에 있는 야시장에서 1만 킵(kip)짜리 뷔페 한 접시면 든든히 채울 수 있다. 우리 돈으로 넉넉히 쳐도 1천500원이 채 안 되는 돈이지만 가성비는 그 열 배다. 언뜻 보기에 소박한 루앙프라방의 하루. 하지만 이보다 더 평화로운 곳을 찾기도 힘들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여행을 택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이 느리고 둥근 라오스스러움에 몸을 맡겨 볼 만하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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