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두37772 판결

1. 배경사실-복수노조 설립 및 교섭창구 단일화

독일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유한회사에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만 있었는데, 노조가 파업 중이던 2012년 7월 기업별노조가 설립됐다. 회사는 2012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금속노조 조합원수가 여전히 다수를 점하자 기업별노조의 개별교섭 요구에 동의했다.

회사는 2012년·2013년 개별교섭에서 기업별노조 조합원에게만 무분규격려금과 생산격려금을 지급했다. 위와 같은 차별 등으로 인해 금속노조 조합원수는 2012년 350명에서 2014년 초 50여명으로 급감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회사가 개별교섭시 각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체결권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하는 중립유지의무를 위반했다면서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및 불법행위를 인정하기도 했다(대전고등법원 2015나13940 판결).

한편 회사는 2014년 기업별노조가 다수노조가 되자 개별교섭 동의 없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진행했고, 교섭대표노조가 된 기업별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2. 문제가 된 2014년 단체협약 내용

회사와 기업별노조는 2014년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부칙 103조(적용 범위)에서 협약 18조·26조·30조·44조·75조·79조·83조 등에 있어 심의결정 및 노사협의·노사합의의 주체가 되는 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조를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단체협약 세부지침에서는 협약 48조(유급휴일)의 노동조합 창립기념일은 교섭대표노조 창립기념일을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협약 18조(휴직)8호는 회사경영 및 업무상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경우 노사협의 후 조합원의 휴직을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6조(고용안정 및 위원회 구성)는 노사 각 5인으로 구성된 고용안정위원회에서 회사 분할·합병·양도시 조합원의 고용 및 근로조건 변동, 단체협약 승계에 관한 사항과 경영악화시 효율적인 인력운영에 관한 사항에 대해 심의·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29조(법인체 분리)와 30조(용역 또는 하도급)는 법인 분리·용역·하도급 전환시 조합원의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을 사전에 조합과 합의하도록 하고 있다.

협약 44조는 취업규칙 개정시 조합과 협의하고 불이익변경시에는 조합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고, 75조(건강진단 후 사후조치)는 건강진단 결과 건강관리상 주의를 요하는 자 등에 대해서는 본인 및 조합과 협의해 배치전환 등의 필요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으며, 79조(재해발생시의 대처)는 재해발생시 회사는 조합과 협의해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고, 83조(근골격계질환 예방대책 마련)에서 회사는 근골격계질환 유발요인과 관련해 조합의 의견제안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 판결 요지-교섭대표노조의 대표권 범위

1심(2015구합77745 판결)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회사의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인정했고, 2심(2016누52882 판결)은 공정대표 의무로 인해 교섭대표노조의 권한이 포괄적으로 확장된다는 회사의 주장이 이유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2014년 단체협약 18조는 휴직을 원하는 참가인(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자신들이 소속된 노조를 통해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26조·29조·30조는 근로자의 신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에 관해 참가인으로부터 소속 조합원의 이익을 도모할 기회를 박탈하는데, 이는 단체교섭권의 향유 주체인 참가인의 본질적 권한을 침해한다. 44조는 회사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별노조에게 취업규칙 변경 절차에서 의견청취·동의 권한을 부여하므로 근로기준법 94조1항에 부합하지 않고 참가인의 참여를 전적으로 배제하므로 불공정하다. 48조는 단순히 유급휴일 확보라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 자신이 속한 조합에 대한 소속감 등을 고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데, 기업별노조와 참가인이 원만한 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음에도 기업별노조 창립기념일에만 휴무하도록 하는 것은 노조 간 상호갈등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고, 이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취지에 반한다.

75조·79조·83조는 안전·보건 등 근로자에게 중요한 근로환경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자대표 등은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대표자나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근로자다. 과반수노조가 아니어서 관계법령상 근로자대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별노조에 권한을 독점하게 해 관계법령에서 정한 기구를 유명무실하게 운영할 경우 소수노조 소속 근로자가 근로자대표로 선출될 기회를 봉쇄하거나 그와 같이 선출된 근로자대표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

대법원은 원심이 교섭대표노조의 법적 지위 또는 권한, 공정대표의무 및 그 증명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및 공정대표의무에 관련된 법령규정의 문언,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와 목적,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동조합 및 그 조합원의 노동 3권 보장 필요성 등을 고려하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교섭대표노조가 가지는 대표권은 법령에서 특별히 권한으로 규정하지 않은 이상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보충교섭이나 보충협약 체결을 포함한다)과 체결된 단체협약의 구체적인 이행 과정에만 미치는 것이고, 이와 무관하게 노사관계 전반에까지 당연히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용자가 교섭대표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을 포함한 사업장 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단체협약 자체에서는 아무런 정함이 없이 추후 교섭대표노조가 사용자가 합의·협의하거나 심의해 결정하도록 한 경우 그 문언적 의미와 단체협약에 대한 법령 규정의 내용·취지 등에 비춰 위 합의·협의 또는 심의결정이 단체협약의 구체적인 이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보충협약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는 때에는, 이는 단체협약 규정에 의해 단체협약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위임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위 합의·협의 또는 심의결정은 교섭대표노조의 대표권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단체협약 규정으로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이나 그 조합원을 위 합의·협의 또는 심의결정에서 배제하는 것은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4. 판결의 의의 및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문제점

한국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특정 시점에 조합원수가 많은 노동조합에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부여하고 2년 내외 기간에 배타적인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행사하도록 한다.

교섭대표노조가 된 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과정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전반에 걸쳐 사실상 배타적·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거나 행사하려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교섭과 쟁의행위라는 노사관계의 핵심적인 국면에서 배제된 소수노조는 노조로서의 중요한 기능을 상실하고, 일상적인 이해관계 대변 및 고충처리·조합활동에서도 더욱 위축되게 된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의 이러한 현상은 교섭대표노조의 대표권 범위나 공정대표의무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상판결은 공정대표의무 위반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 정해진 교섭대표노조가 행사할 수 있는 대표권의 범위가 법에 정해진 것을 넘어 노사관계 전반에까지 확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교섭대표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 구체적인 근로조건을 정하지 않고 추후 노동조합과 협의·합의 등을 하도록 한 경우 소수노조에게도 그 협의·합의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해야 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령에 따라 설치되는 기구에 소수노조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교섭대표노조 대표권의 경계와 공정대표의무의 내용을 명확히 한다고 해서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사실상 박탈해 버리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회사는 법정에서는 패소했지만, 현장에서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자주적인 노조를 고사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교섭테이블에서 마주 앉지 않아도 된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사용자가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소수화하고 위축시키는 것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그러한 욕망을 확대재생산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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