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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로서의 기업
▲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포드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헨리 포드(1863~1947)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유념해야 할 단 한 가지의 원칙은 노동자들에게 최대한 높은 임금을 지급하면서 최대한 고품질의 상품을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포드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인 1914년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일당 5달러로 인상했다. 이것은 당시 임금을 두 배로 인상한 것인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120달러 정도 된다고 하니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포드는 고생산성과 고임금을 교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고생산성은 다른 말로 하면 “종속”이라고 할 수 있고, 고임금은 다른 말로 하면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고생산성(종속)과 고임금(복지)을 교환하는 시스템을 포드주의라고 한다. 20세기 복지국가의 기본 원리는 바로 이 포드주의였다.

포드는 이 일로 포드자동차 회사의 주식 10퍼센트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였던 도지(Dodge) 형제(픽업트럭으로 유명한 도지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바로 그 도지 형제)로부터 주주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도지는 포드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주는 대신 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9년 미국 미시간주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하면서 도지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의 주된 목적은 주주의 이익이다. 경영진의 권한은 이 목적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것은 대단한 역설이다. 20세기 복지국가의 기본 원리를 제공한 포드주의와 반대로 복지국가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주주자본주의가 이란성 쌍생아라는 사실은 역사적 아이러니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주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국가를 정초하고자 하는 21세기 우리에게 깊이 고민할 거리를 제공한다.

외국의 사례 중에 프랑스가 눈에 띈다. 미슐랭 그룹 회장인 장 도미니크 세나르와 프랑스민주노동총연맹의 전 위원장인 니콜 노타는 2018년 3월 프랑스 정부에 ‘공공재로서의 기업’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기업은 기업 고유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돼야 하며, 기업의 영업이 초래하는 사회적·환경적 영향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을 민법에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업 고유의 이익”이란 주주의 이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기업은 사회적 존재이자 환경적 존재”(보고서를 접수한 프랑스 경제장관 브뤼노 르메르의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9년 5월22일에 공포된 프랑스 법 ‘기업의 변화와 성장에 관한 법’(PACTE)은 이 보고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법률 169조는 다음과 같다. “기업은 사회적 이익을 위해 경영돼야 하며, 기업의 영업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환경적 영향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 규정은 현재 프랑스 민법전 1833조에 반영돼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48년 제헌헌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정했다. 이른바 “이익균점권”이라는 것이다. 헌법 제정 당시 제헌국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됐던 조항이다. 노동기본권 정도는 논쟁거리도 아니었다. 이 조항은 1963년 헌법 개정으로 삭제됐다.

하지만 이익균점권은 오늘날 기업의 “레종데트르”를 논함에 있어서 다시 불러낼 만한 가치가 있는 개념이다. 오늘날 이익균점권은 단순히 기업의 이윤을 종업원인 노동자와 주주가 나눠 갖는다는 차원의 좁은 개념이 아니라, 기업을 일종의 공공재로 정의하고자 할 때 그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개념으로 재해석돼야 할 것이다.

기업이 단순히 이윤 추구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행복에 기여하는 존재로 재정의될 때 노동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과 지혜를 최대한으로 발현함과 동시에 “공동선(common well-being, bien-etre commun)에 최대한 기여한다는 만족감”(필라델피아 선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곧 노동문제를 생각할 때 노동의 가격과 교환조건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노동의 내용과 의미(경제적 의미만이 아니라 사회적·생태적 차원에서의 의미까지)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ILO 헌장)가 갖춰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박제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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