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경영(학)에 문외한이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대한민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임이 분명하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올해 기업환경평가에서 한국은 평가대상 190개국 중 5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지난 6년 동안 미국·일본 등을 앞지르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 4위와 5위를 번갈아 가며 차지하고 있다.

간혹 보수언론이나 사용자측이 세계경제포럼(WEF)의 발표를 인용해 노동시장(51위)과 노사관계 협력(130위) 순위를 예를 들고 있지만, 이는 각국 사장(CEO)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

반면 세계은행이 발표한 순위는 기업이 직면한 규제에 관한 법령 분석과 변호사·회계사·컨설턴트를 포함한 전문가 리서치 등을 통해 평가해 신뢰도가 높다. 그런데도 한국의 사용자들은 여전히 기업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흔히 경영을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을 통해서 효율적·효과적으로 일이 이뤄지게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이윤)를 이끌어 내는 것이 경영이라 한다면, 이 땅에서 경영하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사업을 하려 한다.

장시간 노동을 벗어나고자 만든 법에 대해 아우성이다. 기존에 있는 제도를 활용하는 ‘경영’적인 생각보다는 아이스크림 종류만큼이나 많은 노동시간제도를 들고나와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데 애를 쓴다.

이제 노동시간은 경제를 어렵게 만든 주범으로 몰려 누더기가 된 최저임금의 사례를 따라가고 있다.

하루에 한 명꼴로 떨어져 죽고, 사흘에 한 명은 끼여서 죽고, 닷새에 한 번은 차량에 치여 죽는 노동자가 발생해도 기업 책임은 깃털만큼 가볍다.

사용자의 아우성에 정부와 국회가 호응한다.

특별한 경우에 사용되는 노동시간 연장 제도를 유연하게 확대해서 특별하지 않게 만들겠다고 발표하는 정부나, 탄력근로제 받고 선택근로제를 포함해 ‘묻고 더불로 가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은 오십보백보다. 이들의 관심이 노동자의 건강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임금은 줄이고, 산업재해는 책임지지 않는 경영을 어느 누가 못할까. 게다가 정치와 행정이 끌어 주고 밀어 주고 한다면 더 이상 경영은 전문 분야가 아니다. 땅 짚고 헤엄치는 자에게 수영선수라고 할 수 없듯이.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을 통한’ 경영은 ‘책임’이 따라야 한다. 노동력이 유일한 생존수단인 노동자에게 ‘시간(건강)’과 ‘임금(생계)’을 약탈하는 기업을 더 이상 기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노동자를 책임지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되는 것이야말로 효율이며, 자본주의 운영원리다.

물론 온갖 난관을 헤쳐 가며 죽기 살기로 살아가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우성쳐야 할 곳은 노동자가 아니라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비롯한 대기업의 횡포와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이어야 한다.

오래전 삼성의 이건희씨는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용자로서 정치와 행정에 대한 불만은 이해가 되지만 기업에 너무 후한 평가를 준 듯하다.

오늘 노동자들이 매기는 정치와 행정 그리고 기업의 급수는 어떻게 될까. 노동자의 임금·시간·건강을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서 돌아가는 기계같이 치부하는 이들에 대한 평가는 ‘하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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