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보수야당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과 함께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를 요구하지 않으면 다른 법안조차 심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매일노동뉴스 11월27일자). 참으로 많은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 올라갔지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 처리율은 고작 30.4%에 머물러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가 나온 지도 오래전인데,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왜 등장하는 걸까.

현장은 혼란스럽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이 무엇인가? 과연 이를 알고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 중(하물며 환노위 의원 중) 위 내용을 처음 들어 본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근로기준법(52조)은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대해 “사용자는 1개월 이내 정산기간을 평균해 1주간의 근로시간이 50조1항의 근로시간(40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1주간에 50조1항의 근로시간을, 1일에 50조2항의 근로시간(8시간)을 초과해 근로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비록 업무의 시작 및 종료 시각을 근로자 결정에 맡기기로 한 근로자에 대해 근로자대표 서면합의에 따라 각 요건을 정해야 하지만, 1일 및 1주 단위 근로시간 한계조차 없이 악용될 우려가 있다.

올해 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관한 경사노위 합의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소리까지는 없었다. 야당이 새로운 주장을 더하는 자신감은 뭘까. 가깝게는 지난주 노동부가 발표한 ‘주 52시간제 입법 관련 정부 보완대책 추진방향’이 커다란 동기부여가 됐으리라. 법에서 정하고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이미 예고된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계도기간’ 운운하며 사실상 법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관한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를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는 또 무엇인가. 노동법이 이렇게나 어려웠던가? 노동자들로서는 참으로 알기 어렵다. 근로기준법 53조4항은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 동의를 받아 1항과 2항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부는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입법 여부를 핑계 삼았다. 내심은 사용자들에게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가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선전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발생’시로 한정하던 것을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까지 포함하겠다고 아예 다짐을 했다. 사유 확대는 법도 아닌 ‘시행규칙’만 변경해도 충분하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노동부의 위와 같은 약속은 '위법'이고 '위헌'이다.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라는 노동시간 원칙을 예외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예외인정 권한이 과연 행정부, 그것도 노동부에 있는지 의문이다. 법정 노동시간은 노동조건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다. 국회 입법을 통해서만 변경할 수 있다. 오죽하면 노동운동 역사를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라 부르겠나. 주 40시간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피땀이 있었던가. 이 원칙을 시행규칙 하나로 바꾸겠다는 발상이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노동조건은 반드시 법으로 정해야 한다. 헌법(32조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시행규칙으로 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른바 '쉬운 해고'를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요건(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을 단 한 번의 행정해석으로 바꾸기 위해 갖은 행정수단을 사용한 박근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된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행정부의 본분을 넘어서면 곧 위헌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어기면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 위반자를 단속하고 벌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계도기간’을 말하며 미적거리는 것 또한 위헌임이 분명하다.

정말이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지금 당장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분노에서 시작될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11월16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한 발언이다.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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