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한일관계 경색국면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정세를 틈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노동기본권 개악 움직임도 가시화돼 우려가 크다.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지향해 온 국제노동운동의 전통은 흐릿해지고, 4차 산업혁명 시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국제연대도 확대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노동을 경제의 하위범주로만 여기는 역대 정권과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국경을 넘어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고 신장시키기 위해 단결해야 할 한국 노동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의 역할이 요청되는 시대지만 현실은 엄혹하고 만만찮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최근 희망의 단초를 확인한 한일 노동연대 사례를 공유하고 싶다.

지난달 5일과 6일 1박2일로 진행된 일본 전국커뮤니티유니온 31차 전국교류집회에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한비네) 활동가들과 해고노동자가 함께 전체 프로그램에 결합해 연대했다. 처음에는 어려울 듯 보인 일본 커뮤니티유니온과 한비네 간 연대가 여러 경로와 교류협력 과정을 거쳐 힘 있게 성사됐다. 지난 9월 한비네가 주최한 한국비정규노동박람회에 연대한 일본 커뮤니티유니온 동지들이 마무리 행사에서 “비정규직 철폐!”와 “NO! 아베”를 외치기도 하면서 한일 노동연대 결의가 더욱 높아진 적 있다.

일본 커뮤니티유니온은 규슈지역 6개, 시코쿠지역 5개, 긴키지역 21개, 중부지역 8개, 도쿄지역 12개, 관동지역 12개, 동북지역 7개, 홋카이도지역 7개 등 78개의 지역노동조합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로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조합원은 2만명 정도다. 기본적으로 전국 조직에 가입하지 않은 중립 노조로 일부는 산별연맹, 일부는 일본노총(렌고)에 가입하고 있고 극히 일부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 가입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국 단위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개별노조들이 대부분이다.

커뮤니티유니온이 출범한 역사적 배경과 경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5년부터 서비스업, 도·소매업을 중심으로 저임금 불안정 고용이 급속히 확대됐다. 일본의 전국 단위 노총은 렌고·전국노동조합총연합(전노련)·전노협 등이 있는데, 대부분 기업의 정규직을 대상으로 조직해 왔다. 이런 가운데 1981년부터 지역노조에서 노동상담 활동이 확대되면서 도쿄 에도가와구노동조합에 찾아온 시간제 비정규 노동자가 “우리가 가입할 노동조합이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돼 1984년 ‘사랑·우애·도움’을 표어로 한 에도가와유니온이 결성됐다. 이것이 커뮤니티유니온의 시작이었고 이후 1989년 처음 전국교류집회가 열렸다.

커뮤니티유니온은 확고한 연대 지향점을 갖고 지역사회와 밀착해서 활동하며 아르바이트·파견노동자·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불안정 노동자들이 차별 없이 가입할 수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커뮤니티유니온 공동 사업과 각 지역에서 지역노조들이 하는 사업으로 대별된다. 커뮤니티유니온에 가입된 지역노조의 주요 사업은 상담과 분쟁 해결이다. 상담으로 들어온 노동자를 지역노조에 가입시키고, 개별 분쟁 해결을 위한 법률·상담·투쟁 등을 지원한다. 그리고 분쟁 해결시 발생되는 금액 일부를 지역노조에 납부하도록 한다. 커뮤니티유니온 활동은 한국의 지역 비정규직 노동단체들이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린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개선을 위해 전개한 활동과 흡사하다.

12가지 노동 관련 주제를 폭넓게 다룬 커뮤니티유니온 분과회의에서 한비네 활동을 소개하고 한국의 비정규 노동 실태와 해법을 별도 주제로 공유하고 격의 없이 토론했다. 한비네가 양대 노총과 어떤 관계인지, 정파 문제는 없는지, 양대 노총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의 반발은 없었는지,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방도는 어떤 경로가 있는지 다양한 질의와 토론이 이뤄졌다. 시간 제약으로 더 풍부하게 논의되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상호 신뢰가 형성되는 소중한 자리였다. 집회를 마무리하면서 한일 비정규노동연대를 확대강화하고 내년 예정된 커뮤니티유니온 32차 전국교류집회와 한비네 활동가 워크숍에도 서로 연대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처럼 한일관계가 노동권을 제약하는 빌미로 작용하면서 비정상적으로 뒤틀어진 국면에서 노동자연대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 공동행동도 모색해 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 한국 노동가요인 <우리는 가지요>에 맞춰 수백 명의 일본 커뮤니티유니온 조합원 및 간부들과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단체 활동가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몸짓하며 간만에 해방감이 심장을 타고 흘렀다. 아베 따위는 잊고 한일 비정규노동연대가 두 나라의 우의와 연대를 잇는 중요한 통로임을 새삼 절감했다.

한비네와 커뮤니티유니온처럼 불법파견과 이주노동 문제 등 공통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노동운동과 비정규직운동이 더욱 역동적으로 연대하고 협력하길 소망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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