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노동운동의 지향은 평등이다. 늘,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노동운동의 본성이다. 평등은 연대를 통해 실현된다. 연대는 함께 손잡는 것이다. 평등과 연대를 잃으면, 노동운동은 존립 근거가 사라진다. 그러면 이익집단으로 전락한다. 평등과 연대는 반드시 지키고 가꿔야 할 노동운동의 심장이다.

실천을 잘하든 못하든 노조는 노동운동의 기반이다. 노동운동은 노조를 통해 평등·연대를 실현하고 세상을 바꿔 간다. 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노동운동은 쇠퇴한다. 그런데 최근 노조 내부에서 심각한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평등과 연대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흐름이다. 평등과 연대를 반대한다고? 그렇다. 반대하는 흐름이다. 이전에는 노동조합 내부에서 평등·연대를 실천하지는 않아도, 감히 반대하지는 않았다. 동의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명백한 반대 흐름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또는 처우개선을 당당하게 대놓고 반대한다. 시험을 쳐서 합격한 정규직과 그렇지 않은 비정규직 간의 차별은 당연하다는 왜곡된 공정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오로지 제 임금, 제 노동조건, 제 고용이다. 제 몫 지키고 더 키우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비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이 될 수 있는 제 형제와 제 자식에게 저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일단 나 살고 보자는 현상이다. 각자도생의 경쟁에 찌든 사회, 노동의 소득격차마저 10배 차이를 향해 치닫고 있는 노동분단 불평등이 만든 현상이다. 노동분단 해소에 무능하고 무기력한 노동운동이 초래한 현상이다. 이것은 정규직에서 멈추지 않는다. 비정규직이 비정규직 사이에 등급을 매기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상황으로 확산되고 있다.

절망이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싹이 튼다고 했다. 여기에 사례가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부산지하철노조다. 부산지하철노조가 27회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했다. 지난 13일 전태일 추도식에서 부성현 심사위원이 발표한 시상 사유를 소개한다.

"노동자가 임금을 반납하고, 그 반납분으로 540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좋은 일자리는 누구나 인정하듯 이 시대 최고의 정책입니다. 그것을 국가와 자본이 아닌 노동조합이 이뤄 낸 좋은 사례가 생겼습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지하철노조가 바로 그 당사자입니다.

신규인력 창출을 위해 부산지하철노조 3천900명 조합원들이 내놓은 몫은 1인당 평균 1천만원입니다. 통상임금 소송 결과로 미래에 발생할 임금상승분 300억원과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내년에 확대되는 추가 공휴일수당 70억원 등 370억원이 넘는 재원을 부산지하철 안전인력 확충에 사용한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새로운 차원의 일자리연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부산지역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하철 현장의 부족한 인력을 확보해 시민의 안전과 공공서비스 질을 개선하려는 주체적 노력입니다.

노조가 스스로 만든 재원을 공공성 회복과 사회적 가치 창출에 쓰겠다는데도 회사측은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교섭과 파업까지 가는 진통을 거쳐 합의에 이르기까지 노조가 내외부적으로 감당했을 고통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부산지하철노조가 청년일자리 문제와 사회 불평등, 우리 안의 차별 철폐를 위한 담대한 결정을 내렸고, 이를 마침내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노조의 이런 노력이 기폭제가 돼 금융산업공익재단과 상생연대기금·사무금융우분투재단 등 노동이 주도하는 사회연대 실천과 사회적 책임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전태일은 신분이 보장됐던 미싱사에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가기 위해 재단보조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당시 임금에서 반 이상 깎이는 자기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재단사가 되면 노임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고, 어린 직공(시다)들 편에서 정당한 보상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자에게 임금은 절대적인 삶의 방편입니다.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노력하지 이를 깎거나 양보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태일이 그랬던 것처럼 부산지하철노조는 그 힘든 결단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 조합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의 일터에서 공공과 안전을 위해 같이 일할 동료들을 여러분이 직접 뽑았습니다. 그렇게 540명의 동지를 얻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의 대승적 실행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차별이 없는 모범업체를 만들려고 했던 전태일처럼 여러분들은 노동운동의 모범노조입니다. 새롭게 노동세상으로 진입할 540명의 부산지하철노조 신입 조합원에게도 미리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93.3%의 압도적 찬성으로 고용연대를 결의한 부산지하철 조합원들에게 최대의 경의를 담아 찬사를 보낸다. 부산지하철노조가 만든 물꼬는 머지않아 한국 노동운동의 거대한 물결로 용솟음칠 것이다. 진심으로 고맙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