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좁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차를 실은 티베트의 말이 오갔다는 실크로드 여러 갈래 길 중 하나인 차마고도.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보고 싶어 하는 길이기도 하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차마고도 여행의 기억을 쓰려니 민망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 초짜이던 그때, 나를 이끌어 줬던 ‘두총각네’의 한 총각, 지금은 고인이 돼 버린 남아무개군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싶어 도전해 본다.

호랑이가 뛰어놀았다는 호도협을 가로질러 가는 차마고도 옛길은 중국 대륙에서 가장 남서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윈난성에 있다. ‘윈난’하면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삼국지의 제갈량이 남만 원정길에서 그 동네 짱이었던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 일곱 번 놓아 주면서 결국 스스로 항복하게 했다는 얘기로 잘 알려진 ‘칠종칠금’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제 막 여행 맛을 들이던 시절, 한여름 휴가 겸 여행을 어디로 가나 고민하며 동남아시아쪽 여행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두총각네’를 발견했다. 일단 두총각네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 두 총각이 가이드하는 여행이 ‘차마고도’ 트레킹이라는 얘기에 더 귀가 솔깃했다. 당시만 해도 말 한마디 안 통하고, 교통편도 만만치 않았던 중국이라 선뜻 나서기가 주저됐는데, 두 총각이라면 왠지 몸을 맡겨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배낭여행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촘촘한 두총각네의 가이드는 완벽함, 그 이상이었다. 그때 얻은 자신감이 그 후 10년 동안 내 여행에 많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차마고도 트레킹은 윈난성 여행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그 먼 곳까지 가서 2~3일 차마고도 트레킹만 하고 오기는 좀 뭣하기 때문이다. '곤명-다리-리장-샹그릴라'로 이어지는 윈난성 여행도 꽤 가 볼 만한 코스였다. 순천의 낙안읍성처럼 옛 건물과 골목들이 그대로 살아남은 리장 고성의 붉은 색감이나 작은 포탈라궁으로 불리기도 하는 샹그릴라 송찬림사 티베트 사원의 낯선 분위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여기에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장예모 감독과 500명이 넘는 이곳 주민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인상여강’ 공연까지 더해지면 여행의 흥은 최고조에 이른다. 초짜 여행자의 급한 마음 때문에 이 공연을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지금까지도 후회스러울 뿐이다.

이제 차마고도 트레킹을 시작하기 위해 호도협으로 이동한다. 트레킹 일행을 위해 호도협까지 차를 대절해서 가지만, 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가는 길 곳곳이 무너지고 패여, 가다 서다를 되풀이해야만 했다. 드디어 호도협. 길 입구에는 말을 끄는 마부들 몇이 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28구비 길을 지나 정상까지 이르는 길은 말을 타고 갈 수 있다. 걷기를 좋아하거나, 말에게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제 발로 길을 나섰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마부가 이끄는 말 등에 올라탔다. 실크로드를 제대로 체험하려면 걸어가는 게 옳기는 하겠다. 예전에도 말의 등에는 차가 실렸지, 사람이 실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잠시 차가 되기로 마음먹고 말 등에 올랐다. 말을 타고 1미터 남짓의 좁은 산길을 오르는 일이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했으니까. 굽어진 길을 만나 말이 방향을 틀 때마다 몸은 반쯤 절벽 위로 솟구치고, 눈동자는 온통 허공에서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어디 이뿐일까. 40~50도 경사를 푸드득 콧방귀 몇 번 뀌며 힘겹게 뛰어오르는 말 등에서 살아 보겠다고 매달리는 일이 될 줄도 역시 몰랐으니까. 그렇게 정상까지 오른 뒤 말들은 퇴장하고 이제 협곡 사이 좁은 길을 따라가는 본격 트레킹이 시작된다. 협곡의 허리춤에 걸린 구름과 함께 걷는 길이 얼마나 멋진지는 가 보지 않은 이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 절벽을 타고 내리는 폭포 옆을 물거품 맞으며 지나는 일이 얼마나 환상적인지도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게 도착한 언덕 위 ‘객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창문 열어 협곡의 아침 안개를 맞이하는 일은 또 얼마나 운치 있는 일인지! 옆은 막혔지만, 앞은 시원하게 트여 협곡 아래까지 막힘없이 이어진 재래식 화장실에서 대사를 치르는 일 또한 감히 비교할 데가 있을까? 객반나절을 더 걸어 또 다른 객잔에 이르면 이틀 동안 차마고도 여행은 막을 내린다.

두총각네의 남아무개군은 이 길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행들을 꼼꼼히 살폈고, 밝은 미소로 우리를 보내줬다. 그런 그에게 사고가 생긴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달 뒤 라오스에서 만난 다른 여행객을 통해서였다. 차마고도 안내를 나섰던 그가 한밤중 객잔에서 실족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충격적인 소식.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게 여행의 제대로 된 맛을 알려 줬던 그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렇게 그를 시간 속에 묻어 버렸고, 또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기억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묻을 수 있어서 견딜 만하고, 떠올릴 수 있어서 그릴 수 있는 얄팍하고 편리한 시스템.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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