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장

11월20일 시작된 철도노조 파업이 3일차를 맞이하고 있다. 2013년 12월 박근혜 정권의 고속철도 분할 민영화에 맞선 23일간 파업, 2016년 성과연봉제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9월27일 돌입한 파업은 12월9일 국회가 박근혜 탄핵안을 통과시킨 날 종료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하에서 철도노조는 왜 다시 파업에 나섰는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사장이 임명되면서 철도적폐정책을 바로잡기 위한 철도 노사의 노력이 진행됐다. 노사관계 정상화 없이 남북 철도연결과 대륙철도 시대를 대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안전하고 저렴한 철도서비스 제공이라는 공기업 본연의 과업을 달성하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철도적폐정책이란 무엇인가. 2004년 4월 서울-동대구 간 고속철도 개통 당시 홍익회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여승무원들. 이들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이 아니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2009년 공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철도시설과 업무량은 계속 증가하는데 정원 30%가 넘는 5천115명을 일방적으로 감축하고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 왔던 비정상적인 고용구조. 2013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모회사(철도공사)와 자회사(SRT)의 경쟁체제라는 수서발 고속철도 분할민영화까지 켜켜이 쌓인 적폐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2년의 시간도 짧았다.

노조는 부족한 인건비로 연차보상금을 받지 못하고 휴가 전체를 이월시키는 양보를 했고, 사측은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등 상호 노력을 했다. 교대제 개편과 좋은 일자리 창출,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 정규직화, 고속철도 통합논의 등 노사합의 사항은 단순히 철도 노사의 이익을 넘어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초기 문재인 정부 국정기조와 일맥상통한 정상화의 길이었다. 그런데 어려운 노사합의를 체결하고 이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예상치 못했던 강릉선 고속철도 탈선사고가 나자 야당과 보수언론에서는 ‘전문성 없는 정치인 사장’이 안전업무는 뒤로하고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 등 노조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 사고가 났다며 무차별적인 마타도어를 퍼부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분할민영화 정책을 입안했던 관료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탈선사고 원인이 '부실시공'으로 밝혀졌는데도 희생양 찾기에 나섰다. 그때부터 이번 파업은 잉태됐다.

국토교통부는 고속철도 통합논의를 위해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평가'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그런데 최종 결과보고서 제출이 임박한 시점에 국토부는 강릉선 사고를 핑계로 연구용역 중단을 결정했다. 강릉선 사고원인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를 통해 엄정하게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합리적 사유도 없이 국가예산이 투여된 연구용역을 중단시킬 이유가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4조2교대제 개편을 위한 시범운영과 필요인력 산출을 위해 삼일회계법인의 연구용역도 진행됐지만 노사교섭 과정에서 사측은 필요인력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교섭은 결렬됐다. 지금까지 수많은 노사교섭을 지켜봤지만 사측이 검토안조차 제시하지 못한 가운데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이런 궁금증은 김경욱 국토부 2차관 발언으로 해소됐다. 김 차관은 “철도인력 충원은 근거가 없다.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전까지 검토는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는 물론 철도공사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주장의 정당성 여부는 따로 논하더라도 공직자로서 할 수 있는 주장이다. 공공부문 노사관계에서 핵심적인 지적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그렇다. 철도공사의 인력과 예산 결정권을 가진 국토부가 ‘진짜 사장’이다.

개별 공기업이 노사합의를 해도 결정권자인 국토부가 승인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내년 1월1일 교대제 개편을 눈앞에 두고 이제 와서 국토부가 인력증원이 안 된다고 하면 지난 노사합의를 파기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필자는 다음과 같은 가설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왜 철도파업이 반복되는가를 분석한다. 국토부 관료들은 고속철도 통합과 교대제 개편,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초기 문재인 정부의 철도개혁정책에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철도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공약을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가운데 노동정책이 길을 잃고 예기치 못한 강릉선 사고가 발생하자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철도공사가 의뢰한 삼일회계법인 분석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뭉개면 되지만 국토부 스스로 발주한 연구용역은 결과가 자신들 생각과 다르게 나오면 어찌 할 도리가 없으니 무조건 중단시킴으로써 고속철도 통합논의를 물 건너가게 만들고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김 차관께서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권한을 가진 자가 교섭에 나와야 한다. ‘진짜 사장’ 국토부가 나와 노정교섭의 물꼬를 튼다면 그나마 이번 철도파업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한 단계 전진시킨 계기가 될 것이다. 그 방법 외에 어떤 대안이 있는가. 필자의 가설과 대안에 대한 반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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