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의뢰인의 위임을 받아 대신 싸우는 일을 주업으로 한다. 수단은 물론 말과 글이다. 때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상대방의 논리를 물어뜯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면 변호사 윤리장전 10조에 규정돼 있듯 상대방 당사자나 변호사에 대해 비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소속 변호사회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최소한의 선을 지키니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법정 밖에서는 머리 숙여 인사하고 헤어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수령한 상대방의 서면에는 피고들의 주장이 “후안무치(厚顔無恥)를 넘어서서 적반하장(賊反荷杖)”, 심지어는 “언어도단(言語道斷)” “몰염치(沒廉恥)”라고 밑줄까지 그어서 강조하고, 사건 규탄 기자회견에서의 필자의 발언까지 거론하며 “현행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변호사가 피고들의 위법행위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고 비방하는 내용까지 적시돼 있었다. 도저히 변호사가 썼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낯 뜨거운 단어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로펌 중 하나의 로고가 찍힌 서면 위에 나열돼 있었다. 도대체 어떠한 주장이 상대방 변호사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올해 6월19일 금속노조 구미ㆍ대구ㆍ경주ㆍ포항지부는 공동으로 구미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옛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이하 아사히) 공장 앞에서 “해고 4년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승리를 위한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며칠 후면 조합원들이 일터에서 쫓겨난 지 만 4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 2월13일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아사히에 대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기소권고 결정을 했고,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이를 받아들여 같은달 15일 아사히 법인과 당시 대표이사를 기소했다. 불법파견 민사 1심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기도 했다. 당연히 집회에서의 주된 발언들은 불법파견과 관련된 것들이었고, 집회 열기가 최고조에 이른 오후 5시20분께 참가자들은 약 10분 동안 회사 정문 밖 진입로 노상에 래커 스프레이로 “아사히는 불법파견 책임져라” “원직복직” “전범기업” “비정규직 철폐하라” 등의 글씨를 썼다.

아사히는 지회장을 비롯한 참가자들을 공동재물손괴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한편(수사 중), 이 사건 진입로에 대해 출입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기각) 참가자들의 명예훼손과 손괴행위로 5천20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지급명령을 신청(민사소송으로 이행)했다. 문제는 그 5천200만원의 대부분이 도로 재포장비용이라는 점이다. 래커 스프레이는 아세톤 등 저렴한 수단으로도 깨끗이 지워진다. 여러 번의 실험 결과다. 그런데 아사히는 아예 기존 도로를 절삭하고 그 위에 아스콘 포장을 새롭게 하면서 엄청난 비용을 참가자들에게 물어내라고 한 것이다.

참가자들의 행위로 인해 도로 청소가 필요하게 됐던 것은 맞다. 그런데 대법원은 회사 외벽과 유리창 등에 계란을 투척해 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청소가 필요한 상태가 된 경우 그 건물의 효용을 해하는 정도의 것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 재물손괴죄를 인정하지 않았다(2007. 6. 28. 선고 2007도2590 판결). 조합원들의 실험 결과 스프레이 제거 비용은 재료비(도구 포함) 36만원, 노무비 20만원으로 대략 56만원이면 충분했다. 글씨가 써 있다고 도로 통행에 특별한 지장을 받는 것도 아니다. 형사상 죄가 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설령 기소된다고 하더라도 무죄를 다툴 예정이다.

손해배상 소송 답변서에서 실험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도로포장비용은 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원고의 청구는 모두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쟁점 하나하나에 대해 판례를 인용하며 자세히 설명했다. 특별한 주장도 아닌, 변호사라면 일반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주장일 뿐이다.

56만원이면 해결 가능한 사안을 5천200만원이라는 큰 돈을 쓰고 이를 변변한 수입도 없는 해고노동자들에게 청구하는 아사히에 후안무치(厚顔無恥)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되돌려 주고 싶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은 전범기업이 아니라면서 관련 사안을 다룬 MBC 프로그램에 대한 정정보도를 청구했고, 위 집회에 참여한 고등학생까지 고소했다가 지난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소환돼 여야 국회의원들 모두로부터 질타를 받자 급하게 고소를 취소하기도 했다. 진지하게 충고드린다.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려면 최소한의 염치(廉恥)는 갖추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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