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인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올해 7월16일 직장내 괴롭힘 금지를 담은 근로기준법 시행 이후 대다수 상담은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괴롭힘에 대한 성토와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가해자를 직접처벌하는 규정은 없으며, 객관적인 괴롭힘 입증자료를 갖추고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했으나 사업주로부터 해고 등의 불이익한 처우를 당한 경우 사업주 처벌규정이 있으며, 불이익한 조치를 다투는 것은 별도 구제신청을 거쳐야 한다고 안내하면, 실망과 함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사용자에게 또 다른 부당한 처우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냐고, 이런 법을 뭐 그리 좋은 법인 양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냐고 그 성토 대상이 바뀌곤 했다.

현행법상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법 규정은 없으며, 피해자가 용기 내어 신고해도 사용자가 조사하지 않거나, 설령 조사 후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요구한 가해자와 분리 혹은 유급휴가명령 등의 적절한 조치를 사용자가 하지 않아도 사용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단지 신고를 한 피해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한 경우 비로소 처벌하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직장내 괴롭힘을 사업장 내 문제로 국한해 1차적으로 자체적인 분쟁 해결에 중점을 둔 현행법규정에 대해 노동계는 입법예고 때부터 사업주의 부작위에 어떠한 제재도 하지 못하는 점을 들어 실질적으로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는 실효성 문제를 비판했다.

법 시행으로 건전한 직장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정노력을 기울인 회사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대다수 회사 취업규칙상 직장내 괴롭힘 규정들은 법 규정을 그대로 붙여넣기 한 것에 불과하다. 이는 현행법의 한계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으로, 사업주뿐만 아니라 사업주만큼이나 막강한 권한을 가진 관리자의 직장내 괴롭힘이 난무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사실상 직장내 괴롭힘 금지 포기선언과 다를 바 없다.

법 시행 이후 4개월이 지나면서 직장내 괴롭힘 신고 뒤 사용자의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당한 노동자들이 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고소하거나, 노동위원회에 해고 등 불이익 조치 구제를 신청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데 현행법이 가지고 있는 예상했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

고용노동부 충주지청에 고소장이 접수된 첫 번째 직장내 괴롭힘 사건은 2개 병원의 구내식당을 관리하는 위탁업체 사례다. 위탁업체 소속 관리과장은 신입사원에게 다른 병원 구내식당 종사자(20~30명)까지 포함해 40만~50만원가량이 소요되는 신고식을 강요했으며, 매월 2만원씩 회식비를 각출 후 일부를 본인 남편과 아들 생일 축하금이나 이사 비용으로 횡령했으며, 현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들 명의 계좌번호로 이체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부당함을 말하던 노동자들은 왕따·근무시간 축소·상시적 폭언은 물론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인격적·모욕적 언행에 시달린 끝에 퇴사했고 그 수가 5년간 50명에 이르렀다. 그 틈새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채웠으며 직장내 괴롭힘은 더욱 견고해졌다.

의뢰인이 신고식을 거부하자 과장의 괴롭힘이 시작됐으며, 이를 사업주에게 알리자 이미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던 사업주는 과장을 두둔하고 오히려 신고한 노동자를 해고했다. 음성노동인권센터가 직장내 괴롭힘을 문제 삼자 피해자를 복직시킨 사업주는 퇴사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간담회에 참여해 과장의 괴롭힘을 증언했는데도 자체 조사에서 직장내 괴롭힘 사실이 없다고 결론짓고, 오히려 피해자를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새벽 4시까지 출근하도록 하는 전보발령을 내렸다. 피해자는 법을 위반하는 불이익한 처우라며 철회해 줄 것과 가해자 재조사, 재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유급휴가명령을 요청했으나, 사업주는 음해일 뿐이라며 되레 법적 책임을 운운하며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충북의 첫 직장 괴롭힘 사례여서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했으며. 충주지청이 사업주에게 유급휴가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음에도 사업주는 법적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노동위원회가 부당전보로 판정하자, 이튿날 피해자를 해당 과장이 있는 사업장으로 원직복직 조치했다.

지방노동청·노동위원회 모두 해당 사업장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며 화해를 권고했음도 사용자가 꿈쩍도 하지 않을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현행법 조항 때문이었다. 특히나 불이익한 처우를 한 사업주를 처벌하는 근로기준법 76조의3 6항이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므로 사업주는 노동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더라도 합의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결국 처벌받게 되니 피해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심문 과정에서 흐느끼다 진술을 끝내지 못하던 62세 피해자는 원직복직 명령을 받기 전까지도 부당함에 맞서면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현재는 문제 제기를 않았다면 이토록 괴롭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하는 중이다. 그런 피해자 곁에는 처벌은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는 가해자와 방관으로 2차 가해를 한 사업주, 그들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이끌어 낼 수조차 없었던 노동청·노동위원회·노무사만이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특유의 상명하복·집단주의 조직문화 속에서 직장내 괴롭힘은 음성적으로 조직에 자리 잡고 곪을 대로 곪은 환부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해결 주체를 사업주로 국한시킨 실효성 없는 현행법 규정은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들의 고충을 해소하지 못한 채 나쁜 사업주들에게 또 다른 꼼수를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무기력한 법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로 얼룩진 사례들이 쌓인 이후에나 개정될 것이다. 돌이켜보자.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이후 4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회사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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