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

온기는커녕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몸은 평소의 배로 불어나 있었다. 퉁퉁 부어오른 손은 돌덩어리만치 딱딱했다. 바이탈 사인(vital sign)은 초 단위로 그가 살아 있음을 알려 줬다.

"보고 싶은 사람들, 동지들 본다고 힘내서 버텨 줘서 고맙데이. 태희야, 이제 고향으로 가자. 저쪽에서는 흉한 꼴 보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레이. 먼저 가서 엄마 기다린나." 그는 넉 달을 버텨 냈다.

이름은 김태희. LG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 아이디는 1412365715. 서부산서비스센터 노동자로 올해 7월6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인터넷 개통작업을 하다 6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두 차례 수술을 거쳤다. 넉 달 넘게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 있던 11월15일 아침 7시59분 숨을 거뒀다.

장례식장에는 LG유플러스 임원의 조화가 놓여 있고, 상조물품에도 LG유플러스라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그는 LG유플러스 직원이 아니다. LG 조끼를 입고 LG 고객과 통화하고 만나고 LG 상품을 설치하고, 그러다 다치고 죽었는데도 그는 LG 직원이 아니다. 2015년 거제서비스센터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쭉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거제에서 일한 3년여 동안 그의 회사는 세 번 바뀌었고, 부산에서 일하는 1년 동안에도 업체는 또다시 변경됐다. 4년 동안 그의 아이디는 무려 6번이나 바뀌었다.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옥상과 전주에 있는 중계기가 바닥에 있었다면, 위험환경의 경우 2인1조 작업을 원칙으로 했다면, 실적급 위주 특수고용 임금체계가 아니었다면…. 김태희 조합원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LG유플러스 정규직이고, 회사가 그의 노동을 평가절하하지 않았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에 빌어먹는, 이 빌어먹을 외주화 구조 탓에 김태희 조합원이 죽었다. ‘위험의 외주화’는 ‘죽음의 외주화’가 돼 버렸다.

LG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 재해율은 통신업 재해율 평균보다 무려 17배나 높다. 하지만 원청도 하청도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 원청은 안전을 '비용'으로 생각하고, 하청은 '중간착취'에만 몰두한다. 김태희 조합원 사고 이후 원청은 웬만한 차에는 실리지도 않는 사다리를 나눠 줬고 하청업체들은 수령확인 서명을 받았다. 오늘도 조합원들은 ‘지뢰밭’에 ‘혼자’ 들어간다. 조합원들은 ‘목숨을 건 노동’을 한다.

▲ 김태희 조합원 추모공간

노동조합의 잘못과 책임 또한 크다. 돈보다 권리, 복지보다 안전이 중요한데도 노동안전과 관련해서는 정말 낮은 수준의 단체협약을 갖고 있다. 사측에 “노동안전교육을 토론식 강의로 진행하라”고 요구만 했지, 노동조합이 직접 교육하지 않았다. '건바이 임금체계'를 없애지 못했고, 직접고용을 쟁취하지 못했다. 노조는 죽어라 구호만 외쳤을 뿐이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투쟁한 것은 김태희 조합원이 쓰러지고 나서다. 노조간부로서 김태희 동지와 가족들께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늦었지만 싸워야 한다. 우리 모두가 김태희이기에, 우리가 죽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리고 김태희 동지처럼 싸워야 한다. ‘사측사람’이던 김태희 동지가 노동조합 가입을 결심하고 ‘노조간부’를 맡아 활동한 것처럼, 우리는 김태희 같은 사람을 조직하고 또 조직해야 한다. 생전 동지가 입에 단내 나도록 외친 구호를 우리는 다시 외쳐야 한다. 동지를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법은 이것뿐인 것 같다. 진짜사장 LG가 직접 고용하라! 직접고용 쟁취투쟁! 결사!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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