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9. 5. 16. 선고 2017가합571652 판결


1. 사건 개요와 쟁점

피고 회사는 반도체 제품·부품 제조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나머지 피고들은 피고 회사의 전현직 대표이사·전 교섭대표·노무담당 부장·파트장·전 실무자·전 자문노무사다. 원고들은 전국금속노동조합(원고 노조)과 그 조합원인 피고 회사 전현직 근로자들이다.

원고들은 주위적으로 피고들이 2010년 6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행했던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단일한 노조파괴 의사하에 지속·반복적으로 행한 하나의 불법행위로 보고, 예비적으로는 각 부당노동행위들을 개별 불법행위로 보아 무형의 손해 또는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것을 청구했다. 쟁점은 이 사건 부당노동행위들이 하나의 행위인지, 여러 개의 행위인지, 해당 행위들은 불법행위로 인정될 수 있는지, 인정된다면 그 당사자들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다.

2. 관련 법적분쟁 경과

1) 제1 행위 : 피고인들(노무담당 부장·파트장·전 실무자)이 2010~2011년 중 ‘원고 노조 지회 집행부를 중징계·고소·손배소를 통해 회사에서 퇴직시키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직장폐쇄 대응방안’을 작성하고, 파업 참가자의 회사 복귀를 원천 차단해 전원퇴직을 원칙으로 하고, 자발적 퇴직자가 기준에 미달할 경우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설정하는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을 작성하고, 친기업성향 노조설립을 위해 원고 노조 조합원들의 탈퇴를 강요하는 등 노동조합의 조직 또는 운영에 지배·개입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가 확정됐다(대구지법 김천지원 2015. 2. 11. 선고 2013고단1007 판결, 대구지법 2016. 10. 19. 선고 2015노1122 판결).

2) 제2 행위 : 2012년 피고 회사의 원고 노조 조합원 75명을 대상으로 한 정리해고가 특정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한 불이익취급의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중앙노동위 2012. 10. 12. 자 2012부노183 재심판정, 서울고등법원 2017. 1. 11. 선고 2014누8652 판결, 대법원 2017. 5. 26. 선고 2017두121 판결).

3) 제3 행위 : 2015년 피고 회사가 제2 노조 조합원들에게만 무파업 타결금 등을 지급하고, 원고 노조 조합원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행위가 불이익 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중앙노동위 2015. 12. 16. 자 2015부노191 재심판정, 서울행정법원 2016. 11. 3. 선고 2016구합834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 4. 6. 선고 2016누76062 판결).

4) 제4 행위 : 2015년 피고 회사가 많은 원고 노조 조합원들에게 고과 C를 부여해 정기승격 제외, 정기승호 축소, 그에 따른 임금하향 지급 등을 한 것은 모두 부당인사 및 불이익취급의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중앙노동위 2015. 11. 27. 자 2015부해903/부노168 병합 재심판정, 서울행정법원 2017. 3. 9. 선고 2016구합483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 6. 1. 선고 2017누41353 판결).

5) 제5 행위 : 피고 회사가 2012년 원고 노조 조합원들이 중식집회 참석, 노조 조끼 착용 및 리본패용 등 정당한 조합활동을 이유로 조합원 144명에게 인사고과 불이익을 줬는데,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해당 불이익들을 없애는 방식으로 화해 종결됐다(경북지방노동위원회 2013. 3. 21.자 경북2013부노4 화해조서).

6) 제6 행위 : 원고 노조 조합원이 업무 중 발생된 전치 3주의 상해에 대해 공상처리 강요를 거부하고 산재신청을 하자, 피고 회사가 2013년 ‘산재사고 유발로 인해 회사 이미지를 손실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했는데,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인사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취지로 화해 종결됐다(경북지방노동위원회 2013. 8. 16.자 경북2013부해448/부노42 화해조서).

7) 제7 행위 : 피고 회사는 2017년 임단협을 체결하면서 제2 노조 교섭위원의 교섭시간은 유급처리하고, 원고 노조 교섭위원의 교섭시간은 무급처리했는데,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이를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경북지방노동위원회 2017. 4. 21.자 경북2017부노10 판정서).

8) 제8 행위 : 피고 회사의 전 교섭대표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수차례에 걸쳐 원고 노조에 대한 악의적인 글을 게재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기소를 당했고. 그대로 확정됐다(대구지법 김천지원 2013. 5. 24. 자 2013고약1581 약식명령).

3. 판결요지

대상 판결은 제1·2 행위의 경우 단일한 부당노동행위의 의사로 기 작성된 문건을 실행해 가는 과정에서 행해진 것으로서 하나의 행위로 봤지만, 제3 내지 8 행위는 제2 행위일로부터 짧게는 약 7개월(제5 행위), 길게는 약 5년(제7 행위)이 경과한 다음에서야 비로소 이뤄졌으므로 하나의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해 원고들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제1·2 행위는 그 원인과 목적, 과정과 행위 태양, 그로 인한 결과 등에 비춰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는 행위로서,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침해하거나 조합원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평가돼 불법행위 요건을 충족한다고 봤고, 해당 문건작성 등의 결재라인에 있었던 당시 실무자·파트장·부장·교섭대표·대표이사와 내용을 자문한 노무사는 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방조했으므로 민법 760조의 공동불법행위 규정에 따라 원고들이 입은 무형의 손해 또는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제3 행위는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었고 중앙노동위 재심판정 이후 타결금을 바로 지급한 점 등을 고려해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는 불법행위로 보지는 않았다. 대신 피고 회사에게 제2 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지급일부터 원고 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지급일까지 발생한 지연손해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제4 행위는 인사고과 부여 이후의 경과와 관련 소송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피고 회사 측의 태도 등으로 보아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고 회사와 제4 행위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지위에 있었던 당시 대표이사가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다.

제7 행위는 제3 행위와 마찬가지로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고 봐서 불법행위로 보지 않았고, 나머지 제5·6·8 행위들은 당사자 간 화해로 종결됐거나 소멸시효가 완성돼 원고들이 예비적 청구로는 별도로 구하지 않았다.

법원은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 원고 노조는 조합원 또는 조합 가입 대상자가 불이익을 받는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이익을 받는 노동조합으로 소속을 옮겨 노동조합의 조직 활동 및 운영이 저해되는 무형의 손해를, 나머지 원고들은 해고돼 생존권을 위협받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봤다.

4. 의의

대상 판결은 단체교섭거부의 부당노동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기 위한 요건에 대해 설시한 대법원 2006. 10. 26. 선고 2004다11070 판결의 법리를 참조해 이 사건 제1 내지 제8 행위가 각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했다. 대체로 특정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함이 명백하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었는데도 회사가 감행했다면 불법행위로 봤고,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면 불법행위로 보지 않았다. 이는 부당해고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1993. 10. 12. 선고 92다43586 판결의 법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대상 판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불법행위로 인정된 부당노동행위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범위를 굉장히 넓게 인정했다는 점이다. 대상 판결은 문건 초안 작성을 담당한 실무자부터, 결재라인에 있는 중간관리자들, 최종적으로 보고를 받았던 당시 대표이사(그룹 회장), 자문 노무사까지 가해자로 인정했다. 전 대표이사인 그룹 회장은 수사 과정에서 노사 관련 문건은 회장까지 결재를 받는다는 실무자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그러한 문건을 보고받거나 작성을 지시한 바 없다고 끝까지 부인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됐고, 자문 노무사 또한 각종 부당노동행위 문건에 대해 회사 담당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이 수사기관에 의해 압수됐음에도 석연찮은 이유로 불기소됐는데, 이들에 대하여도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피해자의 경우 노조뿐 아니라 전 조합원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위자료 인정 금액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원고들에게는 그들이 겪었던 부당노동행위가 ‘사회에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불법행위’라는 법원의 한마디가 훨씬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이 판결이 상급심에서도 유지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