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대통령에게 휴식을 제언한다’는 지난 칼럼에 이은 글이다. 먼저 한마디 붙인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의 상당수는 글쓴이가 누구 편인지부터 따질 것이다. 그중 많은 이는 거기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내용으로는 넘어가지도 못할 거다. 운동과 진보도 편 가르기 진영논리에 찌들대로 찌들어서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고픈 마음에 보탠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자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을 찍었다. 그러함에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희망한다. 박근혜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을 때, 방어를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동지들과 함께 수배된 철도노조 집행부를 감쪽같이 숨기고 박근혜를 통쾌하게 엿 먹이면서도 내 마음은 동일했다. 세월호 참사 초창기, 당시까지 집회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그 누구도 엄두 내지 못했던 서울 광화문광장을 투쟁의 근거지로 구상한 뒤, 장소 확보가 가능하겠냐며 저어하는 국민대책회의와 유가족을 집요하게 설득하고 실행에 옮겨 성공하면서 광화문 집회 시대를 개척했을 때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희망했다.

내가 애초부터 그랬던 사람은 아니다. 모든 대통령의 실패를 도모했던 사람이다. 그래야 체제를 뒤집을 수 있다고 봐서였다. 그랬는데 대통령 실패로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오히려 대통령이 실패하면 노동자·상인·청년 등의 계급·계층 안에서도 밑바닥층은 보수 지지자든 진보 지지자든 가리지 않고 더 아래로 추락하는 현상을 봤다. 대통령이 실패해도 보수든 진보든 상위 10%의 부·권력·명예는 끼리끼리 더 강화되는 현상을 봤다. 박근혜까지 역대 대통령의 실패 결과로 한국의 10대 90 불평등이 미국을 능가하는 처참한 상태까지 왔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한다. 불평등 완화를 영혼 깊숙이 소망한다.

그런 차원의 제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도약-상생-대타협 라운드테이블’을 제언한다. 이 구상이 성공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위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나, 라운드테이블의 목표는 한국의 극심한 불평등·불공정의 완화다. 그렇다, 완화다. 완전하게 해결한다는 유토피아 환상을 심어 주면 실패한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선언처럼 빈말이 돼 괴롭힌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적 사안의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완화의 물꼬만 터도 대성공이다.

둘, 라운드테이블 주제는 불평등·불공정의 핵심 사안이고 갈등의 중심축인 몇 가지를 선택하면 될 것이다. 일자리·노사관계·교육·복지 등 굵직한 몇 개를 추려서 테이블에 올리면 되지 않을까 싶다.

셋, 라운드테이블 결과는 대타협이 돼야 한다.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하는 계급·계층의 청원을 맞바꾸는 식의 소타협으로 가면 실패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다. 나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노사관계를 예로 들면, 재벌 상속세를 국가 특별기금으로 적립하되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설계해서 재벌의 소유권·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등의 대타협이 있지 않을까 싶다. 노동에는 겐트시스템(실업보험 노조 운영) 등 획기적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는 대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원·하청 불공정 관련 하청사용자협의체 구성과 원·하청 합의 시스템, 하후상박 임금인상의 사회적 원칙화, 비정규직·영세 상인 등의 처우개선과 청년일자리를 위한 전 국민 사회연대기금,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증세 대타협 등 상상하면 가능한 방안은 풍부하다.

넷, 라운드테이블의 대상은 각계각층 100명 이내면 어떨까 싶다. 기본적으로 대표자들이 참여할 것인데, 그들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이 대표하는 단위의 이해관계에 갇혀 있다. 일상 삶 속에서 고통당하는 당사자들의 발언이 드러나야 한다.

다섯, 라운드테이블은 대통령이 직접 주관한다. 대통령은 판을 깔고 인사말을 하고 기조발제를 한다. 발언에도 참여한다. 다만 대통령이 주관해도 최종 심판관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하중을 전부 떠안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최종 심판관은 라운드테이블 참석자들의 합의가 돼야 한다. 합의 규칙은 참석자 90% 동의 등으로 엄격하게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여섯, 라운드테이블 진행자는 내용을 풍부하게 이해하면서 탁월한 사회 역량을 가진 전문가를 물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으로는 버거울 수 있다. 손석희를 중심 사회자로 세우고 너덧 명의 사회자가 함께 진행하면 매끄럽지 않을까 싶다. 토론 안내를 위한 전문가의 PPT 발제도 필요하다.

일곱, 대통령의 라운드테이블은 1년의 기간을 상정하고 진행한다.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고 남을 수도 있다. 라운드테이블에서 어떤 세력의 방해로 대타협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함에도 라운드테이블은 의미가 있다. 누가 어떤 세력이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몰두해서 불평등·불공정 완화를 반대하는지 국민이 생생하게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대성공 아닐까 싶다.

짧은 지면이라 간략하게 적었다. 만약 청와대가 심사숙고해서 라운드테이블을 추진한다면, 꼭 당부할 점이 있다. 기획팀을 내부로만 꾸리지 말라. 거기에 교수들만 붙이지 말라. 각 계급·계층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축적한 활동가를 불러 함께 촘촘히 기획하라.

이한빛과 김용균, 빈곤 자살 및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제언한다. 문재인 대통령 꼭 성공하길 바란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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