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이철희·표창원 의원에 이어 이용득 의원까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현실 정치 어려움을 소화하지 못한 초선 국회의원들의 퇴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현상을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유인으로 살기를 원했던 이철희·표창원 의원의 결심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자신의 소신을 제대로 밝힐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의 결과다. “신사의 품격을 갖춰야 할 상황에선 전사처럼 싸우고 소리를 질렀고, 전사의 용맹함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선 소신 발언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난” 것에 대한 심적인 갈등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이와 다르게 이용득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자신이 실현하고자 했던 노동회의소라는 정책 구상이 문재인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됐음에도 아무리 애를 써도 오히려 정부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이 배경이 됐다.

초선의원 세 명의 불출마 선언은 모두 ‘목소리’와 관련돼 있다. 이철희·표창원 의원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즉 침묵을 심적으로 강요당하는 상황을 못 견딘 것이라면, 이용득 의원은 목소리를 내지만 아무런 반향이 없는 상황을 고발한 것이다. 제대로 된 소통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상황은 더불어민주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혁신이 필요한 모든 조직에서 이러한 현상은 똑같이 나타난다.

이미 앨버트 허시먼(Albert Hirschman)이 1970년에 이야기했듯이 쇠락하는 기업이나 불만이 있는 조직에서 회원이나 고객은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즉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 조직에서 이탈할 것인가, 아니면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어 변화를 요구하고 주장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목소리를 끊고 이탈한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정부·기업·정당·단체 모두에 적용된다. 침묵을 강요받거나 침묵이 지배하는 조직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허시먼의 이론 외에 최근 주목받는 ‘심리적 안정’이라는 이론이 있다. 혁신이 조직의 성쇠를 좌우하게 된 세상에서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재능 있는 인재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인재가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고, 실패에 따른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조직이어야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주장의 정당성은 많은 연구를 통해 확증되고 있다.

이 이론이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만약 상사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부하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대형 참사 사례가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부기장이 기장의 자신만만한 위세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좀 더 강하게 이야기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테네리페 공항 참사, 사장의 성과 종용에 실험을 조작해 무려 10년간 친환경 디젤엔진이라며 고객을 속인 폭스바겐, 사장이 거의 실행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하루에 네 번씩 업적을 확인하며 직원들에게 성과를 종용해 고객들에게 무리한 끼워 팔기를 하다 추악한 실상이 드러난 금융기관 웰스파고 등 많은 대형 사고들이 위기를 이야기하지 못하거나 잘못을 감추면서 생겨났다. 황우석 사건·세월호 참사·조국 사태 등 우리의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된 사건들도 돌이켜 보면 침묵하거나 잘못을 감추면서 시작된 비극이다.

다수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수적인 다수에 그치지 않고 세력화된 다수라고 한다면 그 안에서 다른 신념을 밝힌다는 것은 웬만한 배짱이 아니면 어렵다. 위계적 관계로 형성된 조직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탈과 퇴장을 각오하고서야 자신의 신념을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옛날보다 훨씬 더 불명확하고 모호하며 예측 불가능하다. 다양한 관점과 해법이 제시될 수밖에 없다. 조직이 이를 포용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에서 혁신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의 조직은 혹시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은 조직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말하는 데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가? 그렇게 느낀다면 여러분의 조직은 현재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다. 그렇다면 신속하게 심리적 안정 진단을 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우리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하겠지만, 우선 자신의 조직부터 진단하는 것이 가능한 순서다. 외부를 향한 외침이 내부 침묵을 없애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요란함 속에 내부의 깊은 병을 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위기의 징후를 알리는 목소리에서 신호를 읽지 못하는 지도자를 둔 조직은 혁신하기 어렵다.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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