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반도체 대기업 A사가 지난달 한 임원의 모친상에 직원들을 동원해 조문객 안내와 부의금·방명록 관리, 신발·화환 정리 같은 장례지원업무를 시킨 것으로 알려져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회사는 부모상에 직원들이 조문을 가서 돕는 것은 미풍양속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장례식장에서 시간대별로 해야 할 업무분장표까지 받았던 직원들은 "자발적 조문이 아닌 강제차출이었다"고 반박했다.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A사는 지난달 기업문화담당 부사장 모친상과 관련해 장례식장에 직원들을 배치했다. '조문 지원' 명목인데, 업무시간이었다. 조문 지원인력 배정표도 만들었다. 장례 첫날과 둘째날 시간별로 장례식 안팎 조문객 안내와 화환 정리, 부의금·방명록 접수를 할 직원들을 정했다. 이렇게 배치된 인원은 28명이다. 인사권자(상무·팀장·PL)를 제외한 숫자다.

직원 B씨는 "상조업체에서 6명밖에 오지 않아 홀서빙만 아주머니들이 했고, 직원들이 신발정리까지 했다"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까지 시행된 마당에 기업문화를 개선해야 할 담당부서가 되레 갑질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사가 업무시간에 지원을 가는 직원들에게 '경조출장'이 아닌 일반적인 '국내출장'으로 근태보고를 시킨 것도 논란이다. 회사는 이메일로 직원들에게 조문 지원인력 배정표를 보내면서 "업무시간 내 지원에 참가시 근태는 국내출장으로 제출하라"고 적시했다.

회사 취업규칙 경조출장 기준에 따르면 '팀장 포함 3명'이 근무시간에 조문을 갈 수 있다. 경조출장을 근태로 인정한다. B씨는 "경조출장을 쓰면 일부 인원밖에 갈 수 없다"며 "직원들을 대거 동원하기 위해 경조출장이 아닌 국내출장으로 근태 보고를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직원 C씨는 "하반기 인사평가(11월1~15일)를 앞두고 직원들이 압력을 받지 않았겠냐"며 "밉보이기 싫어서 간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측은 갑질 논란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부모상시 팀당 3명을 지원한다는 회사 상조 규정에 따라 경조 지원이 이뤄진 것"이라며 "상조 지원을 할 때 지원자들의 자발적 의사를 존중했고,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고용노동부 근로개선정책과 관계자는 "사회적 압력 정도의 수준이라면 모르겠지만 장례식장 근무표까지 있었다면 직장갑질 중 '사적 용무 지시'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올해 7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뒤 이른바 직원들을 동원하는 '경조사 갑질' 신고는 많이 줄어들었다"며 "아직도 대기업에서 경조사 갑질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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