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애진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기업 외부의 노동력과 자본을 결합하는 사업방식은 첨단화된 지 오래다. 건설업 다단계 하도급, 제조업 사내하청 등은 흔한 유형에 속한다. 반면 더디지만 이러한 사업방식에 제동을 거는 시도들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생산공정 도급방식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한 판결들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법원은 몇 해 전 한 완성차 회사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모든 자동차 생산공정은 한 대의 자동차 생산을 위한 일련의 작업과정 또는 부분공정에 불과하므로, 비록 정규직 노동자의 공정 사이사이 협력업체 노동자가 분리된 공간에서 작업하긴 했지만 기능성·기술적 관련성과 연동성을 무시하고 하청노동자의 담당업무 본질을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로 사업주의 강행법규 잠탈행위를 바로잡고자 했다. 최근에는 사내하청도 아닌, 물리적으로 분리된 제3의 공장에서 행해진 수출부품 검수업무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하급심 판결을 내놓으면서 사업지배자의 꼼수를 통제하기도 했다. 장소나 공간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생산공정의 유기적 관계를 중요하게 본 것이다.

이처럼 사업주가 법과 제도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책임과 위험을 외부로 돌려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방식이 일부 법원의 판단을 통해 사후적으로 통제되고 있지만, 사업주에게는 여전히 작업공정을 외주화할 매력적인 유인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간 개념을 엄격히 따져 원·하청 ‘사업종류’를 구분하는 산재보험 적용 방식이다.

극단적 사례로 조선기자재 부품 제조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가 줄곧 적용받던 ‘강선건조 및 선박수리업’의 산재보험료율을 ‘임대 및 사업서비스업’으로 변경해 달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들 수 있겠다. 쉽게 말해 원청이 수주한 선박부품 제작업무를 사내하청들에 모두 도급을 주고 나니 순수하게 원청의 사업은 ‘기계장치 및 소비용품의 임대업’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법원은 ‘원청과 하청의 사업은 특정 제품의 제조라는 사업목적에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는 경제적 통일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원고의 사업종류는 ‘제조업’임을 분명히 했다.

언뜻 상식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 소송이 대법원까지 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원고 회사의 청구는 1심에서 상고심까지 모두 기각됐지만, 근로복지공단의 사업종류 적용기준에 따를 경우 원고의 주장이 아주 터무니없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실제 근로복지공단은 제조업 원·하청 회사의 사업종류를 결정함에 있어 다소 도식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단은 원칙적으로 산재보험 적용단위를 ‘독립된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전제한 후 사업 또는 사업장이 장소적으로 분리돼 있다면 재해발생 위험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본다. 경제적 활동 단위도 그것이 분리돼 있다면 하나의 사업으로 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원청이 생산공정을 도급한 경우, 특히 재해 위험도가 높은 공정 위주로 도급한 경우에 원청과 하청의 사업종류를 달리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공단의 사업종류 적용 기준은 “생산공정이 상호 유기적이고 공간과 장소를 넘어선 불가분적 결합관계에 있을 경우 원청이 그 사업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법원의 사업개념 판단 기준에 상당 부분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재해 위험도가 낮은 사업종류로 분류될 경우 원청이 절감할 수 있는 산재보험료는 상당한 액수일 것이다. 이는 원청이 위험을 외주화하는 강력한 유인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점을 잘 아는 공단이 마치 분절된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작업공정에 대해, 재해 위험도를 달리한다는 이유로 각 공정별 사업종류를 달리 정하는 처분을 하는 것은 위험의 외주화 유인을 적극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그렇다면 외주화의 유인이 되는 사업종류의 적용 기준도 노동안전법제의 개정과 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개선될 필요가 있다. 재해보상에서뿐만 아니라 보험관계 적용과정에서도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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