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15년. 그가 노동회의소라는 화두를 던지고 지나온 시간의 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 노사관계 틀을 바꾸지 않고서는 다가올 기술혁명에 대응할 수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노동회의소는 목표가 아니라 신념이고 신앙”이라고 말했다. 조직된 노동자 10%를 넘어, 전체 노동자의 90%에 육박하는 중소·영세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드시 이뤄야만 하고, 이를 위해 끝까지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확고한 믿음에 뒤따라오는 건 늘 실패와 좌절이었다. 2016년 직접 정치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직접 법안을 만들고 노동회의소 설립을 위해 뛰었다.

정권이 바뀌고 소속 정당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뀌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노사는 물론 정부와 여야를 만나 수차례 설득했다. 2003년 처음 한국형 중앙노사관계를 구축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노사관계 틀을 바꿔야 한다고.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변화에 대응하고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동자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총노동 대 총자본의 사회적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노동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은 편견부터 드러냈다. 노동이기주의라고도 했다. 편견과 적대감에 지칠 법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내년 총선 불출마를 결정한 그는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국회의원 배지에 연연하지 말고 정치라는 수단을 통해 사회를 바꿔야 한다”며 “노사관계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해 달라”고 했다. 이용득(66·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야기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그를 만났다.

“노동회의소에 바친 15년, 정치는 수단”

-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취에 대한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온다. 진실은 무엇인가.
“불출마한다. 내겐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느냐 안 하느냐의 의미가 없다. 정치가 우선이었다면 몰라도 노동회의소가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를 더 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정치는 수단이다. (정치인으로의 활동이) 노동회의소를 설치하는 데 도움이 되냐 안 되냐의 문제다.”

-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민주노동당·녹색사민당부터 현재의 더불어민주당까지 정치활동을 꾸준히 했다.
“정치와 노동은 불가분의 관계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사회를 바꾼 건 노사다. 정치는 사회를 바꾸는 수단이었다. 기본권을 강화하고 민주사회로 바꾸는 수단이 정치였던 것이지 그 주체는 노사였다. 네덜란드의 빔 콕 전 총리와 노벨평화상을 받은 스웨덴의 정치가 얄마르 브란팅도 노조 출신이었다. 얄마르 브란팅은 사민당 당수를 하며 노사관계에서 나온 대화의 결과물로 복지사회 모델을 만들었다. 영국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걸고 복지사회 실현의 길을 갔다.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국민이 기존 정당과 연대 또는 독자정당을 건설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과 한국노총이 시도한 녹색사민당이 있다. 노동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판단했기에 민주노동당 창당에도 참여했고, 녹색사민당에도 함께했다. 독자적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어렵다는 판단에 기존 당과 통합도 추진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당이 만든 당이 민주통합당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안에 이때의 통합 정신과 취지가 남아 있나. 찾아보기 힘들다. 당만 나무랄 게 아니라 노동계에도 책임이 있다. 정치권에 들어가는 노동계 후배들이 많은데, 정치에 입문할 때는 정치와 노동의 상관관계를 인식하고 들어가야 한다. 정치를 통해 노동계가 지금 해야 할 것들을 찾고 그것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일반상식이다. 그런데 노동계 출신들이 정치에 들어간 후 어떤가. 반대로 노동계 인사를 영입하는 정당 안에 정치와 노동과의 연관성을 인식하는 사람이 있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만 바라보고 좇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추격을 당하는 입장이 됐다. 기술개발 측면에서 중국이 이미 한국을 앞선 것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중심의 경제정책은 현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은 산업사회 주체였던 노사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그 시스템을 바꾸자고 15년 동안 계속 얘기했고, 이를 위해 직접 정치에 뛰어들게 됐다.”

- 노동회의소 구상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하게 됐나.
“한국노총 위원장이 되기 1년 전인 2003년에 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를 만났다. 그때 빔 콕 전 총리가 내게 ‘너네는 노사관계가 없어’라고 했다. 충격을 받았다. 총노동 대 총자본이 중앙노사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우리는 조직된 10% 노조가 자기 사업장 조합원을 위해 10% 사업장 분배 문제만 다루는 노사관계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 변화를 위한 중앙노사관계는 없는 것이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이듬해 한국노총 위원장이 되면서 한국형 중앙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함께할 동지를 구하는 것도, 중앙노사관계 구축을 이해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이런 시도 중 하나가 노사발전재단이다. 정부 없이 노사가 급변하는 산업사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논의하자는 취지였는데 정부 산하기구가 되면서 실패했다.

산업사회의 주체였던 노사가 결국 나서야 한다. 현재 노조 조직률은 10%대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를 끌어안는 노사관계를 만들어 지금의 조직된 10%와 결합해 총노동 대 총자본이 파트너로 서야 한다. 바로 노동회의소다. 그 시스템을 만들자고 15년 동안 이야기했다. 정치를 통해 한국형 중앙노사관계를 만들려 했다. 창당 때부터 함께한 민주노동당·녹색사민당 모두 안 됐다. 민주당과 통합하고 공동대표와 최고위원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직접 국회의원이 돼 법안을 만들고 추진했는데 어려웠다. 노동이란 말만 해도 사람들은 노동이기주의로 바라봤다. 노동회의소를 만들기 위해 정치권에 들어왔는데 노동이란 단어만 들어가도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졌다. 그런데 노동회의소는 노동회의소와 경제회의소를 말한다. 노동 편의주의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노사 공동이익을 위한 시스템이다.”

정부 반대에 유연화된 노동회의소 설립 법안

- 왜 그토록 안 됐을까.
“한국형 중앙노사관계 구축에 대해 대부분이 필요하다고,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존의 사회적 대화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회의소는 기존 사업장 출신 활동가가 아닌 사업장이 없는 전문가 출신의 노동운동가들이 활동하게 된다. 방대한 규모의 전문가 그룹을 만드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노사공동의 이익을 위한 일이므로 노사가 낸 고용보험을 쓰자고 하니 정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노동회의소 최대 걸림돌이자 적은 정부다. 현재 발의한 법도 애초 주장했던 완전한 모습이 아니다. 저항세력인 정부를 자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느슨하게 만들었다. 의무가입도 없고 회비 강제징수 조항도 넣지 않았다. 고용보험에서 재원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고용보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로 명시했다. 우선 시작이라도 해 보려는 거다. 그럼 나중에 누군가는 노동회의소법을 개정하면서 완성해 가지 않겠나.”

이 의원은 올해 2월 ‘노동회의소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그는 법안을 발의하며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의 복잡성으로 인해 고용형태나 일자리가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며 “비정규직·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구”로서 노동회의소를 제안했다. 노동회의소는 미조직 취약계층의 이해대변과 권익보호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고 국회와 정부·지자체의 각종 법안과 사업 등에 대한 분석 및 입장표명을 하고, 법률 상담과 중앙·지역 단위 사회적 대화와 지원 역할을 수행한다.

- 문재인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것 중 하나가 사회적 대화 아닌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노동회의소 관련 이야기를 듣고 경사노위와 맥락을 같이하니 함께해 보자고 하더라. 천만의 말씀이다. 경사노위가 끼는 순간 안 된다. 핵심이 흔들려 버린다. 경사노위와 노동회의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경사노위는 조직된 노동자 10% 안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로 볼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는 총노동 대 총자본의 대화가 돼야 한다. 조직된 10%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 경사노위를 개선해도 백약이 무효다. 먼저 주체들부터 형성해 놓고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 그 주체 형성이 노동회의소다. 노동회의소가 되면 사회적 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대한민국 노사관계가 만들어지면 사회적 대화는 자동으로 된다. 지금 활동가들의 노사관계에 한계가 있으니 전문가들이 분배문제가 아닌 사회 발전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노동회의소에 이토록 몰두하는 이유는 뭔가.
“노사관계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도 바뀔 수 없다. 노사가 주체가 돼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응해야 한다. 노동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적 측면만 보고 노사관계를 버렸다. 때문에 노사는 주체적 역량은커녕 주체로서의 의식도 없다. 바둑에도 수순이 있다. 열 수만 두더라도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이 달라진다. 우리는 외국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노사관계가 발생하고, 정치를 수단으로 사회를 바꿔 오지 않았다. 경제가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사관계를 뒤로 제쳐 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중국이 우리 뒤를 바짝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잃어버린 노사관계를 찾아야 한다. 노사가 주체가 돼 사회변화를 만들어 보자. 정치가 사회를 바꾼 나라는 없다. 노사가 그 나라를 바꿨고, 정치는 수단이었다.”

- 20대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법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제정법이기 때문에 공청회를 해야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간사 합의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법안 제정에 공감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반대 중이다. 노동회의소 설립에 정부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유연법안이니 큰 부담이 없다. 고용보험도 ‘쓸 수 있다’는 정도로 열어 놓지 않았나. 노사존중 사회로 가야 한다. 지금 국회에 계류된 안만이라도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
 

▲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 주 52시간 상한제 누더기 만들어”

-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돌았다. 노동정책은 어떻게 보나.
“노동존중 사회라고 하는데 노동존중을 위한 공약이 사라졌다. 노동을 존중해 주겠다며 피동적인 입장에서 노동존중 사회를 말했다. 묻고 싶다. 노동을 존중하겠다는 게 대통령 자신인지, 정부에 노동을 존중하라고 주문하는 건지 정확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잘못됐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보면 노동존중 사회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노동존중해 줄 테니 표 찍어 달라는 거 아니었나.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관련 보완입법을 이야기했다. <이솝우화>에 ‘부자와 당나귀’라는 내용이 있는데 문 대통령이 딱 그렇다.”

<이솝우화> ‘부자와 당나귀’는 당나귀를 내다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당나귀를 끌고 장에 가자 지나가던 방물상이 “탈 수 있는 당나귀를 왜 안 타고 가느냐”고 하자 아버지가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갔다. 그러자 지나가던 노인이 “아버지는 고생하는데 아들만 편하게 당나귀를 타고 있다”고 나무라자 아들이 내리고 아버지가 당나귀를 탔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물 앞에서 물을 기르던 여인들이 “왜 아버지가 당나귀에 타고 아들만 불쌍하게 걷게 만드냐”고 훈수를 뒀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당나귀에 올라탔다. 그것을 본 한 무리의 사내가 “당나귀가 불쌍하다”고 나무라자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어깨에 메고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에 부자가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내용이다. 그의 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노동존중 사회 해 줄게 해 놓고 재계와 중소·영세 상공인들이 못살겠다고 하니 ‘그럼 보완하라’고 하는 거 아니냐. 제도 시행 2년도 안 됐는데 주 52시간 상한제를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 영세·중소 상공인이 힘든 건 노동시간단축 때문이 아니다. 보수언론이 노동정책에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는 것이다. 중소·영세 상공인의 문제를 제대로 풀고 싶다면 청와대나 정부에 중소·영세 상공인 활성화를 위한 대책기구를 만들어 필요한 것은 없는지 이야기를 듣고 근본적인 치료책을 찾아야 한다.”

“후배들, 노사관계 제대로 만들어 달라”

- 정부에 대한 실망이 큰 것 같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글에 보면 ‘정치란 유의미한 함수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집권 시기를 분석했는데 저소득층 소득향상률이 민주당 집권 시기에 6배 높게 나왔다. 때문에 저소득·노동자 계층은 민주당이 집권해야 했고, 이들을 지지했다. 정치란 유의미한 함수관계를 만들었을 때 정확한 지지층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그 이야기가 참 감명 깊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뭐가 달라졌나. 유의미한 함수관계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2년도 안 돼 주 52시간 상한제를 누더기로 만들었다. 그러니 어서 빨리 노사가 중심이 된 한국형 중앙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 노동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노사주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계를 대표해 정치에 들어서는 후배 정치인들은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정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배지를 오래 달려 하다가는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미래를 찾을 수 있는 주체는 노사다. 정치를 수단으로 해야 한다. 후배들이 그 수순을 지켜 주길 바란다.”

- 앞으로의 계획은.
“시간이 없다. 15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며 총노동 대 총자본의 중앙노사관계 구축을 주장해 왔으나 메아리가 없다. 이미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왔다. 그러나 때가 늦은 게 아니다. 총노동과 총자본 없이 조직된 10% 노동자만으로 무슨 의미가 있나. 문재인 대통령은 90% 미조직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 정치적 입장에서 동의했고, 대선공약에도 넣었다. 결국 공약에 대한 말 한마디도 한 적 없지 않나. 양대 노총 활동가 빼고, 표를 의식한 정치인 참여도 배제한 채 100% 노사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형 중앙노사관계를 구축해 보자. 노동회의소 관련 책을 준비 중이다. 노동계 후배들이 정치권에 진출하는 이유를 망각하는 것 같다. ‘정치판에 들어간다면 정치를 수단으로 노사관계를 제대로 만들라’는 의미에서 방향서 내지 지침서 같은 책을 쓰고 있다. 노동회의소 설립은 나의 신앙이기에 내려놓을 수 없다. 임기 이후에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길을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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