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원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한때 제화공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란 말이 생소하던 시절 이들은 가죽을 가공하는 장인이었다. 제화 회사는 생산의 핵심인력인 제화공들에게 꽤나 후한 대가를 지급했다. 4대 사회보험과 퇴직금까지 보장해 줬다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제화공들은 ‘사장님’이 됐다. 누구도 이들에게 ‘사장님’이 된 이유를 알려 주지 않았다. 일터에는 바뀐 것이 없었다. 오늘도 그렇겠지만, 97년 겨울 제화공들은 공장에서 나눠 주는 일을 묵묵히 이어 갔다. 온 나라가 힘들었고, 나라에서 떼어 가던 돈만 조금 줄었다.

그로부터 20년. 외환위기와 몇 번의 경제위기를 넘기며 수제 구두 몸값은 어느새 수십 만원을 훌쩍 넘었다. 최저임금은 10년 사이 2배 가까이 올랐다. 제화공들의 통장만 20년 전에 멈춰 있다. 근사한 수제 구두 한 켤레 만들고 손에 쥐는 돈은 5천원 남짓. 제화공들은 ‘사장님’이 된 죄로 노후를 편하게 준비할 수도 없었다. ‘사장님’이어서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회사의 답변은 허언이 아니었고, 고용노동청은 제화공의 ‘사장님성’을 열렬히 인증해 줬다.

제화공들은 거리와 법원으로 나서 지루한 싸움을 시작했다. 손에 기름때가 잔뜩 낀 사장님들이 거리로 나서자 언론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사람들은 성수동의 수많은 ‘사장님’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법리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제화공이 ‘사장님’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판결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씩 이겨 가는 모습에 거리로, 법원으로 나서는 제화공들이 늘었다.

얼핏 성수동 이야기는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로 돌아가려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퇴직금을 둘러싼 분쟁은 성수동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산업안전 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누군가는 ‘사장님’들에게 퇴직금을 주는 것이 웬 말이냐며 뜬금없이 공장문을 닫아 버린다. 실체 없는 법인을 상대로 승소해 봐야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고, 싸움에서 이긴 제화공들은 갈 곳을 잃고 성수동 거리를 배회한다.

성수동 20년은 제화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샌가 백화점에는 점장이 사라졌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사장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음식을 가져다주던 배달원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사장님’들이 유니폼을 입고 곡예운전을 하며 도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다. ‘사장님’이 돼 버린 사람들은 드론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 불안한 운전을 계속할 것이다.

성수동 20년이 오늘 정규직인 당신의 이야기인 이유다. 평생직장 개념은 진즉 사라졌고 평생직업 개념도 곧 사라질 것이란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여러분들이 ‘사장님’이 되는 그 순간을 진지하게 고대하는 듯하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로 일을 하는 정규직이 ‘사장님’이 되는 것도 순식간. 다 같이 불안정 노동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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