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노동조합 체계에서 베트남 같은 일당 지배 국가들이 갖는 특징이 있다. 산업 중심의 노동조합 조직이 아니라 지역 중심의 노동조합 조직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는 점이다. 최근 조합원 1천만명을 돌파한 베트남노총(Vietnam General Confederation of Labour, VGCL)은 하노이와 호치민을 비롯한 63개 성의 노동연맹(provincial federations of labour)들로 조직돼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절부터 이어져 온 20개의 전국산업별노조들(national industrial unions)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시장경제 이행 이후 중앙정부의 부처별 노동조합으로 축소됐다.

삼성전자가 하노이에서 가까운 박닌 성과 타이응우옌성에 운영 중인 세계 최대 스마트폰공장에는 사업장별로 따로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다. 베트남은 금속노조나 금속연맹 같은 산업이 아니라 지역 중심이다 보니 삼성전자 박닌공장노조는 박닌노동연맹에, 삼성전자 탸이응우옌공장노조는 타이응우옌노동연맹에 가입돼 있다.

베트남 남부 호치민에 진출한 삼성전자 사업장에 조직된 단위 노동조합은 호치민노동연맹이나 사업장이 소재한 성의 노동연맹에 속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자산업의 성격을 반영한 노동조합 활동과 노사관계 형성은 엄두를 못 내고, 베트남 전국을 포괄하는 삼성전자 차원의 활동도 불가능하다.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기는 하지만, 사업장별로 쪼개지고 고립돼 있어 노동조합의 힘이 대단히 약하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급증과 국영기업 사유화로 생겨난 민간 기업에 조직된 노조는 모두 소재지의 노동연맹으로 편입된다. 문제는 지역노동연맹이 기업의 수준을 넘어 노사관계를 발전시키는 문제에서 전문성과 역량이 없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지역 중심 노동조합 체계는 노동조합을 사용자와 노동자를 이어 주는 ‘다리(bridge)’로 보는 공산당식 노조관과 맞물리면서 노동자 대변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키고 있다.

베트남처럼 사회주의 블록에 속해 계획경제를 했던 몽골의 노동조합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공산당 일당 지배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베트남과 달리 몽골에서는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경제적 이행만이 아니라 다당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정치적 이행도 일어났다. 정기 선거로 정권교체가 일어남에 따라 몽골노총(Confederation of Mongolian Trade Unions, CMTU)은 정당들로부터 독립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몽골은 국제노동기구(ILO)의 87호 협약(노사단체의 결사의 자유 보장)을 비롯한 기본협약 8개를 모두 비준했고, 노동조합운동은 몽골노총을 중심으로 단결을 유지하고 있다.

몽골노총은 14개 산업연맹과 22개 지역연맹을 합해 모두 36개의 가맹조직을 두고 있다. 민간 사업장에 조직된 노조를 지역으로만 편재하는 베트남과 달리, 몽골에서는 사업장이 가진 산업 특성과 위치한 소재지를 반영해 산업노조연맹과 지역노조연맹에 동시 가입시킨다. 이 때문에 사업장의 단위노조는 가맹비를 산업연맹에도 내고 지역연맹에도 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된다. 얼마 되지 않는 가맹비가 두 군데로 쪼개지다 보니 산업연맹과 지역연맹 모두 재원 부족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활동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노동조합 체계에서 지역 조직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일성은 1964년 6월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4기 9차 전원회의에서 “조직체계에서도 불합리한 것이 있습니다. 례를 들어 지금 직업동맹에는 많은 산별조직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자기 산하에 서너, 너덧 개의 공장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쏘련과 같이 나라가 크고 부문별 공장도 많은 데서는 산별조직들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조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남의 것을 기계적으로 본 딴 교조주의적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의 노동자조직인 직업동맹은 형식만이라도 남아 있던 교섭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고, 결국 노동자들에게 조선노동당의 이념과 정책을 선전하는 사상교양단체로 전락했다.

베트남과 북한 같은 일당 국가들이 지역 중심의 노동조합 체계를 고수하는 것은 노동조합을 생산현장에서 지배 정당의 이념과 정책을 관철하는 ‘사상교양단체’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면 노동조합이 갖는 경제적 기능은 생산성 향상과 산업평화 유지로 축소된다. 정부와 사용자를 대상으로 노동자를 대변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증진하는 기능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당연하게도 당이나 국가의 조직구조와 노동조합의 조직구조는 같거나 비슷해진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총들은 산업 중심의 노동조합 체계에 기반하고 있다. 노총의 가맹조직(affiliates)은 산업노조들이며, 노총의 지역본부는 하부기관에 불과하다. 노총에 가맹비를 내는 조직이 산업노조들이기에 노총의 의사결정은 산업노조들이 주도한다. 우리나라 노총들의 조직 구조는 지역과 산업이 뒤엉켜 혼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행 구조와 방식이 조합원 대변과 노동자 보호에 효과적인지 진지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노총의 가맹조직은 산업노조들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의사결정도 산업노조들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지역본부는 노총의 하부기관에 불과하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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