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청년유니온 조직팀장

바쁘다는 핑계로 태어난 지 8개월이 된 조카를 이제야 보러 가게 됐다. 8개월 아기는 꽤 커서 내일모레쯤엔 스스로 걸어 다니다가 곧 말을 할 것만 같았다. 아이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 이 아이는 어떻게 자라게 될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짤'이 생각났다. 조카가 “이모는 커서 뭐가 될 거야?”라고 물어서 “이모는 이미 다 컸어”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이모는 뭐가 된 거야?”라고 물었다는 짤. 순수함으로 뼈 때리는 조카의 썰이었는데 문득 그럼 나는 뭐가 됐더라, 싶은 것이다.

일단 곧 말을 할 것 같은 조카가 나보고 뭐가 됐냐고 물으면 나는 '활동가'가 됐다고 답해 줄 것이다. 조카에게 활동가라는 직업은 자신이 알 수 없는 수만 가지 일 중 하나다. 그가 할 수 있는 질문은 그 일은 무엇을 하는 일인지, 재미는 있는지 그런 것들이겠지. 그런 이야기를 나눌 것이 기대됐다. 보통 어른 세계에서처럼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이고 ‘무엇’을 하며 활동가로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질문에 변명하듯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테니.

어떤 큰 계기도, 사건도 없이 나는 활동가가 됐다. 그저 재밌어서 시작한 일이 왜 재밌었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머리 아픈 일이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운동권 부모 아래 태어난 일명 꿘수저(운동‘권’ 수저)다. 민주화세대 자녀들이 이 영역에는 드물지 않게 있었고 그들을 꿘수저라 부른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보기 어려운 활동가라는 직업이 나의 선택지에는 있었고, 그게 또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준 ‘선택지’라는 것은 흔히 꿘수저 조기교육으로 불리는 집회현장의 어린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오히려 반감이 돼서, 나는 좀 평범하게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가정과 사회에서 보여주는 평등과 다양성에 대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민주주의를 국민에게 되찾아 오는 것이 시대의 사명이었던 우리 부모세대에 개인 희생은 흔한 것이었고, 그렇게 투쟁의 역사에서 개인을 지웠다. 더 큰 평등과 더 큰 다양성을 위해, 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운동권 문화가 시대 흐름을 거슬러 여기까지 와 있었다. 현 세대가 개인의 삶에 주목하게 된 것도 투쟁이 곧 삶이었던 부모세대에서 키워진 자녀세대가 얻은 교훈이지 않을까. 이제 우리 시대 사명은 지워진 개인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전어 냄새로 돌아온다는 며느리의 집 나간 사정이나 일 잘하기로 유명한 시민단체의 막내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조카로부터 내가, 나로부터 부모님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우리의 선택지는 좀 더 나아져야 한다. 노후가 고민되지 않는 청년은 없다. 많은 청년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현재의 선택을 하고 있다면 활동의, 노동의 영역에서는 어떤 선택지를 보여줄 수 있는가. 우리 앞에 놓인 청년은 회사에서 돈을 벌고 그 돈을 또 '시발비용'으로 써 버리며, 그 와중에도 가성비를 따져 자신의 생활을 꾸려 나간다. 그들 개인의 삶을 안락하게 할 수 있는 수많은 일자리 중 우리가 선택받을 수 있는 차밍 포인트는 안전한 공동체를 표방하는 조직문화 아닐까. 우리는 조직 구성원을 사람으로 보고 사람 귀한 줄 아는 공동체라고, 네가 우리와 함께한다면 너의 고민은 너만의 고민이 아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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