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16년 2천40명, 2017년 2천209명, 2018년 2천142명. 고용노동부 통계로 본 우리나라 산업재해사망 노동자수다. 매일 6명 정도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다치거나,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왜 이리도 익숙해졌을까. 묵직한 익숙해짐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2018년 2천142명이라는 숫자에 ‘김용균’이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이송용 벨트컨베이어 밀폐함 점검구에서 컨베이어 설비 상태를 점검하던 중 벨트와 롤러 사이에 협착해 사망했다. 사고 이후 한국서부발전의 안전품질실 간부직원은 고 김용균씨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의 안전수칙 위반, 부주의를 탓하며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위험은 어디에나 있으며 예방을 위해 사업주가 인식을 달리하고 적극적으로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중요한 안전보건 원칙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추운 겨울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노동자가 다치고, 아프고, 죽는 것이 오로지 노동자 탓이라 주장하는 자본의 탐욕에 맞서 싸운 것이다. 그 투쟁의 현장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있었다. 피해 가족이 앞장섰기에 어쩌면 가능했을 투쟁에 그는 아들 용균이 사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막아야 한다며 투쟁현장 곳곳에 함께했다. 그것이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김미숙씨가 바라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피해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과 편견이었다. 김미숙씨는 한 단체와의 인터뷰에서 “유가족을 일반 사람과 분리해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힘든 유족도 웃을 수 있다. 다만 그 웃음은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것이지만. 또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에 관심을 부탁드린다.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것이 안전문제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안전사회를 촉구하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피해 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미숙씨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동안 산재·재난참사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더 힘들어했다. ‘피해자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피해자와 피해 사실이다.

더 나아가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게 사건의 원인을 묻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 보상을 넘어 피해자가 다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재활과 복귀를 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피해자가 이 과정들 속에서 주체로 서며 권리를 요구하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피해의 서사를 넘어 생존의 서사를 써 내려갈 주체란 점이다.

산재 피해자들의 생존 서사는 이미 이전부터 있어 왔다. 그중 하나가 아시아산재 및 환경피해자네트워크(안로아브·ANROEV)다. 20여년 전 방글라데시와 태국의 대규모 화재사고로 인한 노동자 참사에 대해 아시아지역 산업보건시민운동가들이 피해자 지원과 산업안전보건 문제를 아시아 차원에서 공동대응하기 위해 만들었다. 각국 산업보건운동가·피해자·전문가들이 매년 정기모임을 갖고 정보와 경험교류 등을 진행했다. 올해는 10월28일부터 이틀 동안 한국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은 “NO MORE VICTIMS”다. 더 이상의 산재 피해자를 막겠다는 의지와 기업의 살인을 멈추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한국의 과로사·자살, 직업계고 현장실습, 비정규 노동자, 전자산업 노동자 등 여러 산재피해자와 그 피해 가족이 직접 경험한 산재 피해경험을 나누고 원인과 대안을 토론할 예정이다. 피해당사자들이 직접 피해사건을 밝히고 자기 역할과 운동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에선 또 하나의 주목할 생존 서사가 시작됐다. 거리에서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쳤던 마음을 모아 10월26일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이 출범한다. 김용균재단은 산업재해 추방과 노동자 건강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안전하고 차별 없는 일터,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는 지난 8월19일 발표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와도 부합한다. 4개월간의 조사로 김용균씨 사망원인이 개인 과실이 아닌 위험의 외주화와 원·하청 사이의 책임회피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문제는 외주화가 2000년대 초반 민영화가 본격화된 발전소만이 아니라 전 노동영역에 걸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의 외주화 근절은 재단의 핵심적인 의제이며, 한국 사회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엮어 낼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피해자에게 씌워지는 편견 어린 굴레를 벗어던지고 생존자로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들의 연대 구심점으로서 김용균재단이 되길 바란다. 또한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김용균재단이 힘차게 출발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시길 모두에게 간절히 부탁드린다. 우리 사회가 산재 피해자, 피해 가족과 함께 할 일은 분명하다. 아픔을 우리가 전부 다 알기는 어렵겠지만 그들이 경험한 사건의 사회적 의미를 함께 조명하고, 공감하는 것, 그리고 함께 사회를 바꿔 내는 데 한 걸음 보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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