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파업하고 난 뒤 이렇게 조용하고 아무 일 없기는 처음이네요. 2016년 촛불집회 이후 노동이나 노조 파업에 대한 사회 인식이 진전된 것 같습니다."

철도노조 파업 이후 소감을 묻자 조상수(54·사진) 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노조 파업은 언제나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2006년 KTX 승무원 정규직화를 요구했던 4일간의 파업, 2009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성실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진행했던 세 차례 파업, 수서고속철도(SRT) 운영사 설립에 반대했던 2013년 23일간의 철도민영화 저지파업, 박근혜 정부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했던 2016년 74일간의 파업이 모두 그랬다. 불법파업·정치파업 딱지가 붙었다. 정부와 공사는 "목적의 정당성을 상실한 불법파업"이라고 공격했다.

노조는 지난 11일 오전 9시부터 72시간 시한부파업을 했다. 체불임금 해소와 4조2교대 전환에 따른 인력 확보,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처우개선 합의 이행,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한국고속철도(KTX)-수서고속철도(SRT) 통합을 요구했다. 요구안만 보면 이전에 했던 파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상수 위원장은 "노조가 파업을 하면 으레 정치적 요구를 내세웠을 것이라 보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며 "국민은 불편했을 텐데도 큰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고, 언론도 이전보다 노조 요구안을 상세히 다뤄 주는 변화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72시간 파업을 경고파업으로 규정했다. 단체교섭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다음달 중하순 전면파업에 돌입한다. 조 위원장에게 72시간 파업 소회와 다음달로 예고한 전면파업의 의미를 들었다. 인터뷰는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했다.

공공기관에 체불임금 발생한 까닭
"총인건비 부족하다며 시간외수당·연차수당 못 받아"


- 체불임금 해소가 핵심요구 중 하나다. 공공기관에서도 체불이 발생하나.
"근로기준법이나 단체협약에 근거해 지급해야 할 임금을 예산편성지침 때문에 못 주는 경우가 공공기관에서 적지 않게 발생한다. 공사 임금체불의 원인은 2009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공사 정원을 5천115명 줄였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까. 우선 줄어든 인원으로 열차 운행을 하다 보니 시간외 근무가 많아지고 연차를 사용하지 못했다. 수당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총인건비 한도가 부족하다며 수당을 주지 않았다. 지난해 받지 못한 연차수당이 올해로 이월됐다. 임금협약에 따라 임금이 오르면 명절상여금·조정수당·대우수당이 정률로 인상된다. 공사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이 수당을 2015년 기준으로 지급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체불임금이 발생했다. 노조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한 이유다. 과거 기획재정부가 적정인원을 보장하고 인원을 줄이지 않았다면 체불임금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정원감소 조치로 공사 규모는 3만2천명에서 2만7천명으로 쪼그라들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직원수는 3만명에 머물러 있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었는데도 철도가 계속 달릴 수 있는 배경에는 비정규직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정규직이 하던 차량정비와 전기 같은 시설 유지·보수 업무와 매표업무를 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지난해 공사와 노조는 '노사 및 전문가 중앙협의기구'를 통해 생명·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철도노동자를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별도 논의를 통해 KTX 승무업무가 생명·안전업무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량정비·변전설비 노동자도 직접고용하라고 공사에 권고했다. 공사는 그러나 노사합의와 전문가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 내년부터 시행하는 4조2교대를 위한 인력충원을 두고 노사 견해차가 크다. 노조는 4천여명, 공사는 1천800여명 증원을 말한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에 따라 4조2교대를 도입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자의 일·가정 양립에 영향을 미친다. 철도 안전 문제와도 직결된 주제다. 지금 3조2교대제에 따르면 야간 연속근무를 하게 돼 있다. 심야근무가 노동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 않나. 정부와 공사는 경영적자 상황에서 인력이 늘어나면 그 폭이 확대된다고 우려한다. 국민 안전을 우선한다면 돈이 들어가더라도 합의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최근 공사는 철도안전 강화를 위해 5년에 걸쳐 8조3천억원을 투자한다고 했다. 차량·시설을 개량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에 사람은 빠져 있다. 투자금액 일부를 사람에 쓰면 경영을 악화하지 않으면서도 철도안전을 강화할 수 있다."

"청년 조합원들 투쟁 경험, 노조 자산으로 남을 것"

- 코레일관광개발·코레일네트웍스 등 자회사 노동자의 직접고용과 처우개선을 요구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인천국제공항·한국도로공사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로 정규직-비정규직 간 갈등이 불거졌는데.
"서울대병원 정규직도 파견·용역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하자고 나서지 않았나. 비정규직 업무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공공기관 본연의 업무였다. 그런 점에서 철도 노사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적지 않다. 역무원 등이 아직 자회사에 남아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조의 오랜 과제다. KTX 승무원을 외주화할 때부터 15년을 싸웠다. 외주화를 막고 정규직이 철도안전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했다. 조합원들에게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우리 모두에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노조 내에도 정규직화 문제로 많은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 3년 만에 파업을 했다. 파업을 처음 경험한 젊은 조합원들이 많았을 텐데.
"이번 파업은 젊은 조합원들이 중대한 경험을 쌓은 투쟁으로 기억될 듯하다. 최근 3년 사이 많은 청년들이 공사에 입사했다. 이들은 공사에 취직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가치를 높이기 위해 싸우는 방법을 처음 경험했다. 앞으로 노조 주역은 이들이다. 파업 첫날인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개최한 파업출정식에 조합원 1만여명이 참석했다. 전체 조합원의 절반가량이다. 출정식 이후 젊은 조합원들이 노조활동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생각차를 좁혀 나가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노동정책 이어 철도 공공성 강화 정책도 후퇴"

- KTX-SRT 통합 요구는 철도민영화 저지투쟁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통합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철도 공공성 강화 방안에 미온적이다. 노동정책은 계속 후퇴하고 있다. 철도 공공성 강화 정책과 공약 이행은 지난해 안전사고 이후 주춤한 상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개혁을 외치는데, 국민 생활에 밀접한 철도 개혁을 화두로 삼았으면 한다. 철도를 통합하면 요금을 10% 내릴 수 있다. 지역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철도 공공성 문제로 여야가 개혁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 철도노조를 비롯해 공공부문 노조들의 쟁의행위가 이어지는데.
"박근혜 정권이 추진한 적폐정책 중 성과연봉제는 폐기됐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생애임금을 감소시키는 잘못된 정책을 집권 2년 반이 지나도록 해결하지 못해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약속한 공공부문 정책도 이행률이 떨어진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더니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면서 약속한 일자리 창출이나 정규직화도 문제가 많다. 적폐정책을 놔두고 약속한 개혁정책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투쟁이 확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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