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다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제도 시행을 두고서 야단이다. 중소·영세 사업장 사정이 어렵다고,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나아가 나라 경제가 위기라고 하면서 이 나라는 다시 노동시간타령이다. 집권 더불어민주당도, 자유한국당 등 야당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도 말하고 나섰다. 주 52시간제를 두고서는 조국 사태로 격렬히 대립하던 여야도 그 시행을 보완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주 52시간 시행은 어려워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 한통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단지 보완의 방안에서만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14일에는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이러한 상황 인식을 개인 노조원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동자들과 노조가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는 언론보도까지 있었다. 이 관계자의 머리에는 일반 노동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이라고 박혀 있는 것이다. 개별 노동자들은 노조와 달리 주 52시간제 시행을 유예하거나 보완하는 데 대해 찬성한다고, 이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나 경영계 등 사용자들과 같은 생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은 이 지경으로 온통 주 52시간제 시행을 ‘보완하라’ 하고 있다.

2. 돌이켜 보면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주 52시간제 시행을 두고서 지겹도록 유예하고 보완했다. 노동자의 최장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법정근로시간·노동제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국가권력은 노동시간제를 시행해 왔다. 주 40시간에 12시간의 연장근로를 보태고 토요일·일요일 등 휴일근로는 별도로 취급해 사용자가 무제한의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게 국가 대한민국은 시행해 왔다. 68시간제라고 해야 하나. 그나마 그걸 상한으로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휴일근로의 연장이 휴일근로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에). 노동시간에 관해서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한 대한민국헌법 규정(32조3항)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분명히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으로 노동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었음에도 그걸 쓸데없는 것으로 해석·집행해 왔다. 주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없다고 규정했으면(근로기준법 50조) 이를 초과해서 사용한 사용자를 처벌해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1주일에 연장근로는 12시간까지만 허용한다고 규정했으면(근로기준법 53조) 이를 위반한 사용자는 그 법에 따라 처벌해야 했음에도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최소한으로도 존엄성이 보장되는 인간으로서 취급되지 못한 채 무한노동에 종사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사용자가 시키고 노동자가 하면 노사합의로 하는 것이니 아무리 장시간 일해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선언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으로, 법원은 판결로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제가 인간으로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해석해서 집행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리 장시간 일을 해도 임금만 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어찌나 뿌리가 깊은지 법 개정을 통해 주 52시간까지만 노동해야 한다고 규정했어도 소용이 없었다. 2018년 3월20일 법률 15513호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서 그해 7월1일부터 시행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런데도 그 법을 집행해야 할 권력은 사용자 사정 등을 고려한다며 법 위반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않고 제멋대로 유예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에서였다. 그리고 오늘 다시 주 52시간제 시행을 ‘보완하라’ 하고 있다.

3. 주 52시간제에 관한 개정 근로기준법은 상시 300명 이상, 국가·지자체·공공기관 등에서는 이미 2018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고, 300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가 2020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부칙 1조). 이 개정법에서는 시행에 따른 사용자 경영사정 등을 고려해서 “노동부 장관은 2022년 12월31일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이와 관련해 벌써 국회에 그 입법안까지 제출해 놓고 있는 상태다. 주 40시간도 아니고, 기껏해야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까지 확대해서 일정기간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준비하도록 한 개정법의 입법취지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법대로 입법안을 제출했으면 그만이지 무얼 보완하라는 것일까.

뉴스를 읽어 보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의 조속한 처리와 함께, 입법 절차 없이도 정부가 시행할 수 있는 ‘주 52시간제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시간단축에 대해서 내년 50명 이상 기업으로 확대 시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제계의 우려가 크다”며 “기업들의 대비를 위해 탄력근로제 등 보완입법의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 당정협의와 국회 설득 등을 통해 조속한 입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고서 “만에 하나 입법이 안 될 경우도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정부가 시행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국회의 입법 없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들을 미리 모색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런 말을 들어 보면 주 52시간제의 시행에 따른 경제계 우려를 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헤아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4일에도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들이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예정대로 주 52시간제가 시행될 경우 경영난 가중으로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조선업에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주 52시간제 시행을 유예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경제계의 사정을 대통령으로서 잘 살피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협력업체 말에 따른다면 현대중공업에서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현재 평균 주 63시간을 근무하고 있는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게 되면 2천명 넘는 추가 인원이 필요해서 경영난이 크게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평균 주 63시간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럼 이 나라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은 이 지경으로 장시간 노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인가. 사용자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에 요구한 것이니 말이다. 평균 주 63시간으로 부리겠다고 특별연장근로든, 법 시행의 유예든 뭐든 해 달라고 정부에 읍소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사용자의 사정까지도 대통령이 살피고 있는 것인가.

4.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촛불대선에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 “노·사·정이 2010년 약속한, 1천800시간대의 노동시간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으로 연장근로(휴일을 포함)를 포함한 법정근로시간 주 52시간 상한제를 전면 이행하고,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등으로 임기 내 1천800시간대 노동시간을 실현하겠다고 했다(‘나라를 나라답게’ 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84면). 이 공약대로라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겠다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느라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별도의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휴일근로는 주 12시간의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노동부 행정해석을 폐기하고서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된다며 기존 근로기준법을 해석·집행하는 것이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굳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권에서처럼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서 주 52시간제 시행의 길을 택하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 방안 마련 등을 부칙에 덧붙이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다시 300명 미만 사업장의 시행을 앞두고 주 52시간제 시행을 보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동시간단축을 사용자가 반길 리 없다. 노동시간단축을 공약한다는 건, 그에 대한 사용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겠다는 뜻이 담긴 것일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기존 물량을 유지하려는 사용자는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해야 하니 부담이 따른다. 사용자가 죽는 소릴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야 노동시간단축이 있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도 그렇게 온다. 경영사정·경제사정 등 사용자 반발을 넘어설 때에 비로소 추가 고용 등을 통해 일자리 창출로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공약은 번번이 사용자의 반발 앞에서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뜻은 창대했을지 몰라도 그 결과는 언제나 별 볼 일 없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최저임금 1만원도, 노동시간단축도 그랬다. 그리고 노조가 거세게 반대하기라도 하면 노조와 달리 개별 조합원·노동자는 우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정부의 방침을 지지한다는 정부나 집권당 관계자의 말이 흘러나오곤 했다. 주 52시간제를 ‘보완하라’는 오늘, 말한다. 사용자의 반발을 무릅쓸 필요 없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은 노동자에겐 별 볼 일 없는 자유와 권리만 줄 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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