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때 크고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는 기자증을 대신하곤 했다. 공연장이나 공사 현장에서 형광 스태프 조끼가 그러했듯 말이다. 좋은 촬영 조건을 찾아 무대에 거리낌 없이 오른 건 대개 큰 카메라였다. 스마트폰은 눈치를 살펴 주저했다. 오랜 관습이었으나 곧 뒤집어질 구습이기도 했다. 누구나가 찍는다. 저마다의 언로를 가진 사람들은 이제 대형 집회 무대에 거리낌 없이 올라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와 소형 캠코더로 찍는다. 생중계를 한다. 시청자와 독자를 지닌 미디어는 적어도 그 자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과감했다. 주최측은 1인 미디어를 차별하지 않았다. 기자만이 찍고 알린다는 건 낡은 질서에 들었다. 사법적폐 청산을 외치던 촛불집회엔 구호가 다양했는데, 그중 언론개혁 팻말이 적지 않았다. 기레기 표현이 잦았다. 엘이디 촛불을 든 사람들이 크고 무거운 카메라 든 기자들에게 똑바로 하라고 질책했다. 드론이 날아 담은 촛불 파도 영상이 무대 위 유튜브 생중계 화면에 흘렀다. 천박한 구시대 유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최후통첩에 적었다. 무대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 사라졌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