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원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

“어차피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차라리 태풍이 오면 핑계라도 생기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벌써 올가을에만 세 번째 태풍이 지나간다는 소식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누군가의 말이었다. 그 이후부터 “태풍은 천재지변이냐, 아니냐”를 시작으로,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의 일터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어차피 마감은 정해져 있고 태풍 때문에 미팅을 늦추면 결국 본인의 작업시간만 줄어든다는 프리랜서, 주문이 들어오면 심란하고 안 들어오면 곤란해진다는 배달노동자, 태풍이 오면 출근은 안 하지만 연차가 줄어든다는 중소기업 노동자. 태풍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덧 일터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 얘기로 이어졌다.

청년유니온은 올해 초 부설 상담교육센터 ‘유니온센터’를 출범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노동상담과 교육을 제공하고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리고 주요사업으로 노동상담센터를 찾기 어렵거나, 일하느라 평일 낮에는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평일 저녁과 주말에 내담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만나 상담을 진행하는 ‘찾아가는 노동상담’ 사업을 시작했다. 그 사업에 처음으로 신청한 조합원을 지난 4월 수원에서 만났다.

청년유니온 조합원이기도 했던 그는 인사담당자에게 당장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는 해고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해고예고 의무기간인 30일간 일을 지속하고 나가겠다고 했지만, 그것조차 단칼에 거절당했다. 해고예고수당을 받기 위해 시작한 상담이었지만, 대부분 그렇듯 여러 문제가 줄줄이 확인됐다. 실제 출근은 근로계약보다 1시간 일찍 하고 있었지만 임금에 반영되지 않았고, 연차휴가 역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담을 진행하기로 한 바로 전날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대표는 회사에 나와 해고가 아닌 사직처리를 하려고 사직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임금체불 추산액 약 1천300만원 중 절반인 700만원으로 합의해 사건은 3개월 만에 일단락됐다.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근로감독관이 중재한 결과였고,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조합원은 그것이라도 확실하게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반토막 난 임금조차도 받는 데까지 또다시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임금체불은 분명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연히 받았어야 하는 그 임금을 ‘불법’과 절반으로 합의해야 하는 상황도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그것이 5개월 넘는 싸움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일을 새로 구하는 과정에서, 이전 대표가 새로 취직한 사업장에 쫓아오는 바람에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법은 일하는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한다.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제도가 그런 것처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아직 노동법은 까마득히 멀다.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더 흔한 사회다. 그 안에서 노동분쟁을 견뎌 내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하고 어렵다. 그리고 심지어 결과조차 불확실하다. 그렇기에 냉정히 말해서 그 시간 동안 오히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청년노동자 개개인은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더 유리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노동조합이 있었으면 더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곱씹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청년들에게 노동조합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노동조합이 아직 가닿지 못한 현실, 이것을 노동조합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더 많은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한 방법을 사회가 함께 고심하고 마련해야 한다.

힘든 이야기를 쏟아 냈던 수원에서 만난 그 조합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가 있다. “그냥 사과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어쩌면 노동조합이 간절한 이유는 노동분쟁을 넘어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새로운 일터문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유일한 실마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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