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3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일진그룹 본사 앞은 파업투쟁 현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갓졌다. 전날 저녁 태풍 '미탁' 영향으로 쏟아진 빗속에서 '전면파업 100일 투쟁승리 문화제'를 했던 탓일까. 건물 안팎 맨바닥에서 눈을 붙인 채 휴식을 취하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홍재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일진다이아몬드지회장은 건물 지하부터 1층까지 둘러보며 깨어 있는 조합원들에게 "몸은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홍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아프지 않아야 할 텐데 감기환자가 속출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파업 100일, 일진그룹 농성 30일

이날은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 회사에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일진다이아몬드 단체교섭 결정 권한을 쥐고 있는 일진그룹에 결단을 요구하며 서울 본사 로비에서 농성을 한 지는 30일째다. 2개 조가 격주로 돌아가며 로비 농성을 한다. 환절기에 감기환자가 많아지는 만큼 홍 지회장 근심도 쌓인다.

홍 지회장의 걱정을 아는지 조합원들은 연신 "괜찮다"고 했다. 지난달 4일 로비농성을 시작한 뒤 한 번도 충북 음성에 내려가지 않은 '서울 붙박이' 최영민(38·가명)씨는 두 달치 혈압약을 처방받아 왔다. 집에 "이기기 전에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조합원들과 달리 간이침대를 따로 챙겨 오는 등 장기농성 채비를 단단히 했다. 3개월 무임금에 금목걸이도 팔았다. 최씨는 "10여년간 당했던 갑질을 생각하면 이대로 (파업을) 그만두지는 못한다"며 "회사가 조합원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수렴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전충현(35)씨는 "투쟁이 길어지면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1년은 넘어가야 장기투쟁으로 쳐 주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10년을 투쟁하는 곳도 있는데, 100일이면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는 얘기다. 전씨는 "회사에서 서러웠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 만들고 파업해서 힘든 것보다는 우리 삶이 노조하기 전과 비교해 확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더 큰 것 같아요. 회사를 잘 지켜 동료들과 함께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습니다."

"회사 불성실 태도에 파업대오 단단해져"

지난달 금속노조가 지회에 신분보장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적금을 깨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금붙이를 팔면서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는 가뭄에 단비다. 최근 생계문제로 14명의 퇴사자가 생겼지만 현장복귀자는 없다고 한다. 현재 지회 조합원은 230여명이다. 김대권 지회 사무장은 "(신분보장기금이) 금속노조 최저임금 수준으로 9월부터 9개월간 지급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2014년부터 수년간 지속됐던 '분배 없는 성장'이 지회 설립과 파업 돌입의 배경이라면, 파업대오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회사의 불성실한 태도다. 지회는 "지회를 인정하지 않고 관리대상으로 바라본다"고 비판했다. 실제 회사 교섭대표위원은 교섭 과정에서 "노조가 있으면 회사 존립이 어렵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지회가 요구하는 단협 조항을 회사가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노조=혐오대상'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회의 판단이다.

노사는 전체 125개 단협조항 중 28개 조항에 합의했고, 28개 조항에서는 의견접근을 이뤘다. 나머지 69개 조항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지회 요구가 "인사권·경영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배치전환시 당사자 동의와 노사동수로 징계위원회를 구성하되, 의장을 회사 임원으로 하자는 지회 요구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신기술 도입·공장 신설시 일정 기간 전에 노조에 알리는 조항도 경영권 침해로 보고 있다.

홍재준 지회장은 "인사권과 경영권을 노조가 가져가려는 게 아니다"며 "징계·배치전환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인데, 회사는 경영권 침해라고 하더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회사가 무늬만 노조를 원하고 있다"며 "어설프게 합의하고 복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홍 지회장은 일진그룹의 결단을 촉구했다. 사측 관계자가 교섭 과정에서 "그룹에서 교섭 상황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어 지회가 바라는 수정안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회장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회사와 그룹"이라며 "일괄수정안을 제시하고 성실하게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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