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나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9. 8. 23. 선고 2016가합503027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들은 피고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의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로서, 원청회사인 피고의 계약해지 통보로 용역업체에서 해고됐다. 원고들은 2010년 12월31일 피고를 상대로 불법파견을 원인으로 한 근로자지위확인과 임금차액을 청구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선행소송). 원고들이 임금차액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피고 소속 ‘동종 또는 유사근로자’ 특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피고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원고 청구기각’을 구하며, 관련 절차에 협조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해고상태에서 소송이 장기화되는 것과 과도한 소송비용 부담을 염려해 선행소송에서 근로자지위확인 및 해고기간 동안 용역업체 지급액 기준의 임금지급을 구하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이후 별소로 피고 소속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차액을 청구하기로 했다. 약 5년에 걸친 쟁송 끝에 선행소송이 확정됐고, 원고들은 후속으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피고는 선행소송 패소 후 2016년 4월 말 원고들을 복직시키며 ‘무기계약 근로자’ 지위를 부여했다. 피고의 무기계약직은 원고들 해고 이후인 2012년 하반기 ‘무기계약 근로자 관리지침’에 따라 최초로 신설된 직군이며, 무기계약직으로 복직된 원고들은 기존 업무와 전혀 무관한 업무에 투입됐다.

2. 주장

원고들은 피고 사업장에서의 근로 당시 업무내용, 범위 및 피고 소속 근로자들 업무내용에 비춰 주위적으로 피고의 6직급, 현재의 ‘4(을)직급’에 해당한다. 정규직 공채 합격시 부여받는 직군 근로자를 동종 또는 유사근로자로 특정해 지위확인 및 임금차액을 청구했다. 또한 예비적으로 원고들은 피고의 근로자로 고용이 간주됐거나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시점부터는 피고의 취업규칙 적용 대상이므로 당시 취업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가장 낮은 직급인 7직급, 현재의 ‘5(갑)직급’에 해당한다. 기능직 직군의 근로조건을 하회할 수는 없다는 점을 들어 7직급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차액을 청구했다.

피고는 원고들 주위적 청구에 대해 6직급 근로자 중 일부가 원고들이 담당한 업무를 수행한 것은 사실이나 6직급 근로자가 수행한 전체 업무의 양과 난이도,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고려했을 때 피고 소속 6직급 근로자들과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없으며, 예비적 청구 관련해서도 원고들과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한 7직급 근로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청구기각을 구했다.

3. 판결 요지

법원은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배척하고 예비적 청구를 인용했다.

법원은 원고들의 주위적 청구에 대해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가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였던 반면, 피고 소속 6직급 근로자는 어느 정도의 업무경험과 전문성을 필요로 했고, 원고들을 관리·감독하는 업무를 수행했으며 원고들이 피고 소속 6직급 근로자의 추가업무를 대체할 수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원고들과 피고 소속 6직급 근로자가 업무의 강도나 양, 업무의 범위와 난이도, 책임과 권한, 전문성 등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예비적 청구와 관련해 제출된 인정사실만으로 피고 소속 7직급 근로자가 원고들과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라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이 사건의 기초사실과 인정사실 및 이하 사정에 비춰 원고들에게 피고의 가장 낮은 직급인 7직급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을 적용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①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로 간주된 이후에는 사용사업주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 따른 근로조건이 당해 파견근로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개정 파견법에 따라 사용사업주에게 고용의무의 이행을 구할 수 있는 파견근로자의 경우에도 사용사업주에게 고용의무가 발생한 시점부터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 따른 근로조건의 적용을 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당해 파견근로자와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당해 파견근로자에게는 적어도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근로조건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이 적용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원고들 중 일부가 피고의 근로자로 간주되고 원고들 중 일부에 대한 고용의무가 발생한 시점에 적용된 취업규칙상 가장 낮은 직급은 7직급이다.

② 파견법 6조의2 3항2호는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당해 파견근로자와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 “당해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저하돼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을 뿐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에 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 않은 점, 파견법 입법목적이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저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어도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근로조건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이 적용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③ 근로기준법 6조 차별처우금지 조항, 사업주가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8조1항은 헌법 11조1항 평등원칙을 근로관계에서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인데 ㉮ 원고들의 지위가 피고 소속 7직급 근로자와 유사한 측면이 있고 ㉯ 7직급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기술이나 학력, 책임이나 권한뿐만 아니라 피고의 전체 직급 중 7직급이 차지하는 위치 등에 비춰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의 근로가치가 7직급 근로자의 근로가치보다 낮았다고 보기 어렵고 ㉰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는 이 사건 발전소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업무라는 사실에 비춰 원고들에게 피고 소속 근로자 중 가장 낮은 직급인 7직급 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을 적용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

4. 의의

대상판결은 옛 파견법에 따라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로 간주된 이후에는 사용사업주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 따른 근로조건이 당해 파견근로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야 하고, 마찬가지로 개정 파견법에 따라 사용사업주에게 고용의무 이행을 구할 수 있는 파견근로자의 경우에도 사용사업주에게 고용의무가 발생한 시점부터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 따른 근로조건 적용을 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당해 파견근로자와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도 당해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 사업장에서 적용되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게 되므로 당해 파견근로자에게 적용해야 할 근로조건은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근로조건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하회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로 볼 수 있다.

파견법에 따라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아 근로조건을 정할 때 현행 파견법은 ‘동종 또는 유사근로자’의 존재 및 ‘동종 또는 유사업무’에 대한 주장·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실무적으로 사용사업주 정규직 근로자와 파견근로자의 업무를 애초부터 분리하거나 이 사건과 같이 파견근로자에게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의 지시·감독을 받으며 일부의 업무만을 동일하게 수행하게 하는 경우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와의 동종·유사성을 특정해 입증하는 데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대상판결은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지위를 인정받는 경우 ‘동종 또는 유사근로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입증의 한계가 있다 해도 사용사업주가 해당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사업주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 따른 근로조건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판결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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