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민씨가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설치작업을 하기 위해 옥상 삼각지붕 위를 이동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어떡하죠? 오전에 가야 할 집들이 다 전화를 안 받아요.”

CJ헬로 양천고객센터 설치기사 이희민(27)씨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전에 방문 예약을 한 고객들과 모두 전화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전부터 일이 끝날 때까지 설치기사와 동행하기로 했던 터라 기자 역시 당황했다. 고객이 예약한 것이니 그냥 그 집으로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손사래를 쳤다.

“우리가 왜 그렇게 해요? AS·철거기사처럼 (협력)업체 정규직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기름값도 다 제 돈 주고 가는데…. 허탕 치면 시간 날리고 돈도 날려요.”

CJ헬로 고객센터 설치기사는 건당으로 받는 수수료가 유일한 수입원이다. 인터넷 셋톱박스 교체·신규설치 같은 업무 종류에 따라 수수료도 달라진다. 수수료가 높은 업무를 하거나 처리 건수가 많을수록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다. 하지만 일감은 안정적이지 않다. 고객이 당일 급작스레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치기사는 오늘 얼마를 벌지 가늠하기 어렵다.

 

▲ CJ헬로고객센터 설치기사 이희민(사진 위)씨와 AS·철거기사 김택성(아래)씨가 19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 주택에서 인터넷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쉴 곳이요? 길거리가 휴게실이죠.”

지난 19일 오전 9시10분 서울 양천구 한 상가 앞. 보라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건물 입구에 놓인 탁자 근처에 모였다. 조끼에는 CJ헬로 로고가 박음질돼 있었다. 9시 출근도장을 찍고 사무실에서 나온 AS·철거기사와 장비를 가지러 사무실에 들른 설치기사들이 한 곳에 모두 모였다. 업무 시작시간은 9시30분. 출근 후 각자 일을 하러 떠나기 전까지 캔커피를 마시며 안부를 물었다. 설치기사들은 “오늘 (예약) 몇 건이나 들어왔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모두가 일하러 떠난 뒤 일정이 취소돼 갈 곳을 잃은 희민씨만 남았다. ‘평소처럼’ 차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뒷좌석은 셋톱박스·전화기·TV 박스로 가득했고, 조수석 바닥에는 회사 장비실에 반납해야 할 셋톱박스와 전화기가 굴러다녔다.

“지금처럼 일이 없어서 시간이 붕 뜨고 할때 가장 힘들어요. 저희는 쉬면 돈을 못 버니까, 불안하죠.”

희민씨는 주차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고 오래 차를 세울 수 있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10시50분께 차 안에서 대기하던 희민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11시에 방문을 예약했던 고객이다. 집에 아무도 없을 것 같으니 예약을 미뤄 달라고 요청하는 전화란다. 10분 전에 갑자기 약속을 취소한 게 미안했는지 고객은 “다음에는 변동사항이 생기면 미리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던 중 희민씨가 “시동을 꺼도 되겠냐”고 물었다. 시동이 꺼지자 에어컨도 멈췄다. 지하주차장이라 통풍이 되지 않아서인지 등에 금세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시동을 켜 놓으면 기름 먹으니까 웬만하면 더워도 참고 그냥 창문 열어 놓고 있어요. 엄청 더울 때는 그늘 찾아서 차 세워 놓고요.”

희민씨가 일하며 쓰는 차량 유지비는 20만~30만원 정도다. 업무용 차량과 차량 유지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설치기사는 번 돈에서 고스란히 유류비나 차량 관리비가 빠져나간다. 업무 중 대기시간이 적지 않지만 희민씨가 쉴 곳은 차 안뿐이다.

“사무실에 쉬러 가면 왜 일 안 하고 오냐고 할 게 뻔하고, (사무실 안에) 마땅히 쉴 데도 없고요. 길거리가 그냥 휴게실이죠.”

▲ 이희민씨가 19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단지 지하실에서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천장이 낮고 어두운 곳이다. 스마트폰을 입에 물었다.<정기훈 기자>

“40분 간격 업무 배치,
돌발변수 탓 지키기 어려워”


오후 1시30분이 돼서야 희민씨는 출근 후 마수걸이를 했다. 기존에 쓰던 구형 셋톱박스를 신상품으로 교체하는 업무다. 그는 “동축케이블선을 신규기기에 연결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업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설치 뒤 셋톱박스 업데이트를 하고, 고객에게 안내사항을 설명하고 나니 시간은 30분이 훌쩍 흘렀다.

“이동하는 데 보통 15분 걸리니 적어도 25분 안에는 설치작업을 끝내야 해요.”

희민씨 예상과 달리 25분 안에 작업을 마치지 못한 것이다. 설치기사 업무는 40분 간격으로 배치된다. 이를테면 9시30분, 10시10분, 10시50분, 11시30분, 이렇게 오전에만 네 개의 예약이 잡힌다. 사실상 예약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빠듯한 시간이다.

“예약이 꽉 찰 때는 하루에 10곳 넘게 다니는데, 그럴 때는 퇴근시간도 늦어져요. 공식 퇴근시간은 오후 6시인데 9시 가까이 돼서 퇴근하는 거죠.”

설치기사는 회사의 지원을 일절 받지 못한다. 수입에서 식대와 차량유지비로 상당 부분 나간다. 희망연대노조에 따르면 설치기사의 평균 월급은 250만~300만원 정도인데 이 중에서 식대나 차량유지비로 드는 돈은 50여만원이라고 한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영업 인센티브를 챙기는 수밖에 없다. CJ헬로 설치기사는 TV·냉장고·정수기·공기청정기·전화기·전동퀵보드 등 회사에서 대여하는 가전제품을 홍보하고, 배달하거나 설치하며 추가 수입을 얻는다.

이날은 업무량이 많지 않았음에도 돌발상황 발생으로 희민씨의 업무가 계속 지연됐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오후 1시 예약 고객은 뒤늦게 연락해 설치를 요청했다. 어렵사리 고객 집을 찾았지만 케이블방송 설치에 필요한 필수물품인 셋톱박스 불량으로 헛걸음을 했다. 고객은 “CJ헬로 케이블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좀 더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희민씨는 고객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 시간가량을 허비했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 탓에 설치비 1만4천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 김택성씨가 선 작업을 위해 건물 외벽에 매달려 있다.<정기훈 기자>

담벼락 오르고, 가스배관 타고
“업무는 위험한데 안전교육은 허술”


다음 예약은 단독주택, 기가인터넷 설치를 요청한 고객이다. 작업 난이도가 높아 홀로 작업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희민씨는 김택성씨에게 SOS를 쳤다. 2층 창틀에 드릴로 구멍을 내 1층에 있는 광케이블을 위로 올려 보내는 작업이었다. 김씨는 선을 2층으로 올리고, 고정시키기 위해 1미터 높이의 담을 거침없이 올랐다. 담벼락에 두 발을 디딘 채로는 설치작업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김씨는 익숙하게 가스배관을 탔다. 이후에도 1층 창틀, 보일러실, 벽에 미세하게 파인 홈으로 발을 옮겨 가며 디뎠다.

“아무 데나 밟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여기 보이시죠? 가스배관이 휘어지는 구간에 철 구조물을 덧댄 곳, 여기를 밟는 거예요.”

우려 섞인 시선을 느꼈는지 김씨가 아무렇지 않은 듯 설명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일은 아닌 모양이다. 지난달 노조가 CJ헬로 고객센터 소속 노동자 114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91명 중 80%는 “지난 3년간 업무상사고를 1회 이상 경험했다”고 했다. 5회 이상 사고를 당한 경우도 26.4%나 됐다. 사고 장소는 계단·옥상·난간·담벼락 등으로 야외 작업할 때 부상을 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택성씨는 “기사들은 웬만한 사고나 재해는 이야기 안 한다”며 “특히 설치기사들은 일을 계속하려면 산업재해를 회사에 알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하다 떨어지고, 넘어지는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설치기사에게 충분한 안전교육을 하는 곳은 드물다는 말이 뒤이었다.

2017년 3월 친구 소개로 CJ헬로 고객센터에 첫발을 들인 희민씨도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업무규정, 안전수칙에 관한 책자도 구경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산상 업무분장에 희민씨는 ‘영업팀’으로 돼 있어 모든 기사에게 지급한 안전모도 받지 못했다. 희민씨는 지난해까지 영업팀에서 ‘팀닥터’로 일했다. 고객 집에 방문해 영업하는 것이 주업무였지만 실적 압박이 커서 설치업무를 자원했다. 이후 9개월 넘게 설치업무를 하고 있다.

“안전교육이요? 글쎄요. 1~2주 정도 설치하는 형들 따라다니면서 배운 게 끝이에요. 그냥 혼자 나가서 헤매고 땀으로 젖은 옷 몇 벌 말리고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거죠.”

케이블 AS·철거기사로 일한 지 14년차가 돼 간다는 김택성씨는 “양천고객센터에 입사한 지 2년이 됐는데 회사에서 실시한 안전교육이라곤 5~10분짜리 만화로 된 동영상 시청뿐이었다”며 “동영상은 전신주 탈 때 유의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CJ헬로 고객센터의 경우 전송망 팀이 전신주 작업을 주로 해 AS·설치·수리기사가 전신주를 직접 오를 일이 거의 없다며 한 말이다.

▲ 김택성씨가 자신의 조끼 주머니에 든 공구를 꺼내 보이고 있다. 니퍼와 스패너, 연결 단자가 가득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니빠쟁이’라고 부른다.<정기훈 기자>

“계속 줄어드는 설치 일감 … 커지는 불안감”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는 이사하는 가구가 많아 케이블업계에서 성수기로 불린다. 많은 고객이 이사하는 과정에서 케이블방송·인터넷 업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달 희민씨는 하루 평균 다섯 건 내외의 일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은 그래도 영업 수수료 포함해 300만원 넘게 벌었는데 이번달은 처음으로 200만원도 못 벌 것 같다”고 걱정했다. 주 6일 일하는 설치기사가 250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7~8건의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지난달 160만원밖에 벌지 못했다는 이원섭씨는 “갑자기 일감이 생길 수도 있어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쳐다보고 있다”며 “집이 멀어 대기시간에는 영락없이 차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CJ 본사에는 상생팀이 있다고 들었는데 설치·수리기사 복지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으니 업무가 너무 편할 것 같다”며 비꼬았다.

케이블방송 하락세는 통신 3사가 자본력을 무기로 인터넷TV(IPTV)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본격화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7년 11월 인터넷TV 전체 가입자는 케이블방송 전체 가입자를 역전했다. 이후 격차는 매년 벌어지고 있다.

오후 6시30분 희민씨와 택성씨가 출근해 커피를 마셨던 탁자 앞에 다시 모였다. 희민씨가 “뭐라도 마시자”며 주머니 속에서 꾸깃꾸깃해진 지폐를 꺼내 비타민 음료를 샀다. 작은 음료병을 앞에 놓고 웃으며 수다를 떨다 “수고했다”며 덤덤하게 인사하고 헤어지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길. 매일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길.

 

CJ헬로 고객센터 설치기사는 노동자? 사장님?
법 위반 피하려 근로계약 맺었지만 계약내용은 예전 그대로

CJ헬로 양천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설치기사는 올해 초 센터 운영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업체는 설치기사에 4대 사회보험을 보장하고, 퇴직시 퇴직금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의 월급명세서는 어딘가 이상하다. 기본급이 표기돼 있지 않고 소득세·지방소득세·4대 보험료 같은 공제내역만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모든 노동자에게 줘야 하는 연장·야간근로수당은 물론 없다.

이희민씨도 지난해 영업팀에서 올해 설치팀으로 업무가 바뀌면서 급여명세서에서 기본급 항목이 사라졌다. 대신 10% 수준이던 설치수수료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근로계약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특수고용직이던 도급기사와 다르지 않게 된 것이다. 양천고객센터에서 일하는 21명의 설치·AS·철거기사가 중 이씨와 같은 설치기사 6명이 건당으로 책정하는 설치수수료만 받는다. 나머지 15명의 설치·AS기사는 기본급 있는 근로계약을 맺었다.

희망연대노조 CJ헬로지부는 CJ헬로 고객센터가 불법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고 있다. CJ헬로 고객센터 운영업체는 설치업무를 개인에게 도급할 수 없다. 정보통신공사업법은 정보통신공사업자가 아닌 이가 도급을 받거나 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공사업을 하려면 1억5천만원 이상 자본금과 일정한 기술능력·사무실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설치기사는 없다. 2016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는 "설치·철거기사의 업무가 건물·외벽·옥상·전봇대 등에서 작업을 주로 수행해 개인에게 도급을 맡길 수 있는 경미한 공사 범위를 넘어선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경미한 공사의 경우 예외적으로 도급이 허용되지만 설치기사는 도급 불가 대상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원섭 지부 양천지회 부지회장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음에도 사측이 도급제를 그대로 유지한 탓에 설치기사는 현재 기본 소득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원청인 CJ헬로가 불법도급을 묵인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2016년 협력업체에서 계약한 특수고용직이 불법도급에 해당한다는 논란이 일자 단계적으로 협력업체에 직접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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