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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노동자 주치의는 요원한 일일까?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1천명이 업무상사고로 사망하고 6천500명이 업무상질병으로 사망한다고 추산했다. 업무상사망의 대부분(86.3%)을 업무상질병이 차지하고 있으며, 사망의 원인이 되는 질병은 순환기계질환(31%), 업무관련성 암(26%), 호흡기계질환(17%)이 대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전체 사망의 5~7%는 업무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역과 국가별 산업화 정도에 따라 업무상사고와 질병의 비율, 그리고 주요 업무상질병 종류의 차이는 있지만 순수 의학적 업무상질병의 세계적 규모를 어림잡아 추정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2017년 이후 업무상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산재사망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추정의 원칙’ 도입과 업무상질병 산재신청 증가에 따른 제도적 변화가 질환 사망자 증가의 일차적 요인이며, 따라서 인정기준이 정립돼 있고 선례가 누적되고 있는 뇌심혈관계질환과 기존에 다수 인정됐던 진폐증이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2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열악한 산업보건 상황을 고려하고, 다시 ILO의 업무상질병 자료를 확인하면 제도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우리나라 업무상질병 규모에 심한 우려가 들게 된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업무상질병의 사회적 부담은 노동자들에게, 특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소규모 사업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사회적 보상이 현실적으로 힘들거나 모호한데 예방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결국은 병이 진행되고 나서야 극히 일부만 산재신청을 하게 되는 상황이 업무상질병 영역에서는 매우 흔하다.

몇 년 전 한 사업장에서 이황화탄소 배합 공정 노동자의 혈당이 너무 높았다. 그는 빚이 있어 투잡을 하고 있었다. 수년 전 당뇨병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을 제때 방문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그가 방문했을 당시 측정한 당화혈색소 수치를 근거로 약을 처방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보건관리전문기관 의사는 사업장 보건관리의사임에도 고용노동부의 법적 해석이 불분명해 처방을 못하는 상황이다. 또 이황화탄소 업무가 당뇨합병증을 유발한다는 위험관계를 알고 있으므로 의원에 진료를 예약해 치료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그 또한 하지 못했다. 보건관리의사는 개인의원을 병행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말로만 상담을 하게 되니 의사-환자 관계의 한계가 명확했다. 점차 상담의 순응도는 떨어졌다. 결국 몇 년이 지나고 그가 개인적 여유가 생겼을 때에서야 당화혈색소 수치가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고혈당으로 인해 당뇨합병증이 발생하고 말았다. 뒤늦게 그의 업무적합성을 평가하기 시작했고 이황화탄소 작업에서 업무를 전환했다. 업무전환이 합병증 악화를 막는 데 약간의 도움은 되겠지만, 비가역적인 합병증 발생단계를 이미 지난 상황이므로 그는 앞으로 평생 장애위험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업무상질병의 보상 여부를 떠나서 초기 단계에서 업무상질병을 예방하고 치료적인 접근을 하기에는 지금 제도는 너무도 미흡하다. 방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방 권한이 없는 보건관리의사는 노동자 관리에 실제적 부담도, 책임도 없이 말로만 업무를 할 것이고 노동자 역시 그들에게 실제 고통을 보여 주고 의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문송면의 죽음으로 직업환경의학이 태동하고 30여년이 지난 2019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사업장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유해요인 관리에 대한 법적 책임이 있는 의료진에게 투약과 치료를 함께 받는다면 의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직업성질환 예방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목적의식을 갖게 할 것이다. 산업보건의 핵심인 업무관련성과 업무적합성 판단 필요성은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현장과 노동자의 책임으로부터 시작됨을 절감한다.

그동안 보건관리기관은 전문 업무적합성평가와 업무관련성평가를 얼마나 했을까? 사업장 보건관리의사가 처방할 경우 현장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걱정을 한다면, 현장 유해요인관리에 대한 보건관리전문기관 의사 의무를 명확히 하면 된다. 그러면 지금처럼 고령으로 거동도 힘든 의사들이 중소규모 제조업 사업장 보건관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보건관리전문기관 의사가 처방을 할 수 있도록 노동부에 의원 개설 허용을 요구했다. 노동부는 처방행위로 인해 보건관리업무가 소홀해질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동안 서류 업무뿐이던 사업장보건관리 업무에 더 소홀해질 것이 있을까 의문이다. 제도적 변화로 인한 어려움은 있겠지만, 현장 관리와 치료적 개입의 융합은 실제적이고 전문적인 노동건강 사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치료와 현장관리가 동시에 가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노동자 주치의를 위한 방향일 것이다.

이선웅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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