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인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사용자들끼리 돌려보는 노조탄압에 대한 A부터 Z까지 표준 매뉴얼의 존재가 다시금 분명해 보인다.

익산에 소재한 H사의 경우도 금속노조 설립 후 지속적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적인 발언과 함께 노조탈퇴 종용을 했다. 노조와 2년간의 교섭 끝에 잠정합의안을 도출하고 노사 간 서명날인을 앞둔 시점에 이르자 다급해진 사용자는 노조간부들에게 고급 리조트 제공, 한우 점심 대접, 관리직으로의 자리 제공을 약속한 끝에 금속노조 탈퇴 및 다수노조인 기업노조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금속노조가 참여하지 않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기업노조와 단체협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두 달 만에 모든 것을 일사천리 진행하면서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는 스스로의 발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일부 간부 조합원들의 양심선언으로 사태 전말이 밝혀졌으며, 잔류한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설치하며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자 사용자는 시설관리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수차례 현수막을 무단 철거했고, 이를 항의방문한 조합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와해된 노동조합을 재정비하고 사용자의 노조탈퇴 종용을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익산지청에 고소한 이후 결과를 기다리는 노조 조합원에게 사용자는 결론 나기 전에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닐뿐더러 모두 오해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조합의 단체행동은 모두 '집단적 위력'에 의한 '심각한 직장질서 훼손'이라며 징계했다.

비아냥거리며 반말로 일관하는 관리자에게 "반말하지 마세요"라고 한마디 한 조합원은 10명의 항의방문자 중 집단적 위력의 주동자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왜 현수막을 떼는 겁니까? 다시 거세요"라고 항의한다는 것을 "왜 자꾸 현수막을 거는 겁니까?"라고 잘못 발언해 당시 같은 공간에 있던 15명 남짓한 노사 모두를 빵 터지게 만들어 3분 남짓한 항의방문을 종료시킨 또 다른 조합원은, 조합활동의 흑역사이나, 사용자로부터 직장질서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는 웃음능력자로 인정받았다.

부당징계·부당노동행위 병합사건을 진행해 본 대리인이라면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사건 역시 전북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징계에는 해당하나 부당노동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예상하듯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 테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발간한 2018년 노동위원회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8년 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사건 전체 처리건수는 859건이다. 이 중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것은 378건 중 단 82건(21.7% 인정률)이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한 것은 135건 중 29건(21.5%)에 불과하다. 10건 중 2건만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이 낮은 것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의사의 존부를 노동위원회가 좁게 해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노동위원회의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는 부당징계에는 해당하나 부당노동행위는 아니므로 사용자로 하여금 허용되는 노동조합의 지배·개입의 범위를 넓히는 요상한 결과를 초래한다. 해당 판정은 때때로 일부 사용자에게 면죄부이자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부당징계·부당노동행위 병합사건은 징계의 부당함만을 다투는 개인 차원의 구제사건이 아니라, 부당징계를 통해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중단시키고 정당한 조합활동이 가능하길 바라는 조직 차원의 구제신청이다. 그럼에도 노동위원회는 병합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깊은 고려를 하지 않은 채 단순히 개인 차원의 권리구제 사건인 양 처리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2014년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이 10.2%였다. 4년 만에 두 배 정도 오른 인정률을 근거로 노동위원회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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