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2017가합15778·2018가합15119(병합) 근로에 관한 소송

1. 사건 개요와 쟁점

피고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 주식회사는 경상북도 구미시에 본사를 두고 플랫패널(flat-panel) 디스플레이용 유리의 제조·가공 및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원고들은 피고의 사내하청업체였던 주식회사 지티에스 또는 그 전신인 주식회사 오티에스에 2007년부터 2015년 사이에 입사해 피고 구미공장 직접생산공정(Cold공정, Gut공정)에서 근무했다가 피고가 지티에스와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함에 따라 지티에스에서 전원 해고된 사람들이다.

원고들은 피고와 지티에스 사이에 체결된 도급계약이 실질적으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2조에서 정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므로 근로자파견관계에서 사용사업주에 해당하는 피고가 직접고용 의사표시를 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계약이 도급계약인지, 근로자파견계약인지 여부, 즉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되는지 여부다.

2. 관련 법적분쟁 경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은 2017년 8월31일 피고와 피고의 전 대표이사, 지티에스와 지티에스의 전 대표이사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대구지검 김천지청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같은해 9월22일에는 원고들을 포함한 파견근로자 178명, 즉 지티에스에 소속돼 있던 모든 근로자들을 그해 11월3일까지 직접고용하도록 시정지시를 내렸다. 2017년 12월21일 위 사건을 송치받은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했지만, 대구고검은 이듬해 5월14일 재기수사명령을 내렸고 김천지청은 재수사 끝에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에 이 사건을 회부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는 올해 2월13일 기소권고 결정을 내렸고, 김천지청은 권고에 따라 2월15일 위 사람들을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했다(현재 대구지법 김천지원 2019고단101 사건으로 계속 중).

3. 판결 요지

대상판결은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해당 근로자에 대해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해당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 선발이나 근로자 숫자·교육·훈련·작업·휴게시간·휴가·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2017. 1. 25. 선고 2014다211619 판결1)을 인용하면서, 각각의 요소를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1) 원고들에 대한 피고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있었다. 판단의 주된 근거는 ① 지티에스가 직접 생산을 담당하는 각 공정에 피고 소속 관리자들을 배치했던 점 ② 지티에스 현장관리자들은 대체로 피고 관리자들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인 점 ③ 주간의 일부 공정과 야간의 모든 공정에는 피고 직원이 지티에스 근로자에게 작업지시서를 직접 전달했으며, 해당 문서에는 작업수행 과정에 관한 구체적 지시가 포함된 경우가 많았던 점 ④ 진행하던 작업을 중단시키고 피고가 지시한 제품을 먼저 처리하도록 하는 이른바 ‘KTX 작업’은 그 자체로 직접적·구체적 지휘·명령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점 ⑤ 지티에스 근로자들은 위와 같은 업무상 지시에 그대로 구속돼 업무를 수행한 점 ⑥ 작업일지 등을 제출받는 등 피고가 지티에스 근로자들의 업무수행에 상당한 정도의 감독과 통제를 했다는 점이다.

2) 원고들은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 판단의 주된 근거는 ① Cold공정은 지티에스와 피고가 담당하는 공정이 혼합돼 있어 전후 공정의 작업이 상호 연동돼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점 ② 잡체인지·정수공사 등 피고 관리자의 지시에 따른 피고 직원과 지티에스 근로자의 공동작업도 적지 않았던 점 ③ 피고 직원의 휴가시 지티에스 근로자가 업무를 대체한 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피고 직원의 담당업무가 급증하는 때에는 피고의 지시로 지티에스 직원이 투입돼 업무를 지원했던 점이다.

3) 하청업체가 원고들의 근로조건 등에 관해 결정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지는 않았다. 판단의 주된 근거는 ① 피고가 공정별·근무형태별 작업자수를 비롯한 전체적인 인원배치 계획을 결정했고, 지티에스의 결정권한은 이에 종속된 것에 불과한 점 ② 도급비가 인원수에 따라 결정됐으므로 피고의 채용승인(=도급비 증액 승인)이 없으면 지티에스 자체 신규채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였고 실제로도 피고가 채용에 상당한 정도로 개입했던 점 ③ 지티에스는 업무량과 업무시간·작업속도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던 점 ④ 피고가 지티에스 근로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근무태도 점검에도 상당한 개입을 했던 점 ⑤ 지티에스 근로자의 작업·휴게시간·휴가 등도 피고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았던 점이다.

4) 도급업무의 확정과 구분이 견고하지 않았고 지티에스 업무에 전문성과 기술성이 높지 않았다. 판단의 주된 근거는 ① 계약기간 중에도 피고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수시로 업무가 변경된 점 ② 지티에스 근로자가 실제 수행하는 구체적 업무가 도급계약서 세부항목의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것이 적지 않은 점 ③ 지티에스 근로자들의 업무상 전문성과 기술성은 피고에 의해 제공된 설비와 작업표준서, 관련 교육에 따라 습득이 용이했고 같은 업무의 반복에 따라 습득되는 업무 숙련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는 점이다.

5) 지티에스는 도급받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더구나 지티에스 현장사무실과 지게차는 원래 피고가 무상제공했다가 파견법이 강화되자 임대 형식으로 변경하고 그 임대료 상당액을 도급비에 계상하는 방식으로 전환됐을 뿐이다.

6) 결론적으로 이 사건 계약은 외형상 사내도급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원고들이 피고의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4. 의의

대상판결이 근로자파견관계의 판단에 있어 기존 대법원이나 하급심 판결들과 구분되는 새로운 법리를 설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를 근로자파견 대상업무에서 제외하고, 위반시 처벌하는 옛 파견법의 제 규정이 헌법상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 헌법재판소 결정(2017. 12. 28. 선고 2016헌바346)을 인용하면서,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불법파견 판단에 있어서 법원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에 대한 근로자파견 자체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규제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현행 파견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최근 불법파견 민사사건에서 법원의 판단구조는 거의 동일하다. 각 당사자들이 제출한 증거와 증인들의 증언, 현장검증 결과를 토대로 사실인정을 한 다음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판결)의 법리를 설시하고, 인정 사실을 법리에서 설시한 각 요소별로 대응시켜 근로자파견관계 해당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현재 소송의 승패는 새로운 법리주장이나 실체적 진실보다는 관련성 있는 증거를 얼마나 풍부하게 수집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노동사건이 마찬가지지만, 이 사건을 수행하는 데 특히 힘들었던 점은 증거수집의 어려움이었다. 일반적인 불법파견 민사사건의 원고들은 하청업체에 재직 중이기 때문에 작업지시서·작업표준서 등 문서 복사, 현장 사진 및 동영상 촬영 등을 통해 근로자파견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증거들을 수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노조설립 후 단 1개월 만에 원고들 전원이 해고돼 공장 출입이 불가능했고, 하청업체는 거의 바로 폐업 후 청산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건 의뢰 당시 근로자파견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이것이 해고 이후 2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소를 제기한 가장 큰 이유다.

실제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제출증거 중 당사자들이 직접 수집한 것은 원고 본인들의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하청업체 입사일과 퇴사일 확인)와 원고 한 명이 집에 우연히 소지하고 있었던 Cold공정 상근업무의 폐기품 및 입고 작업지시서 5장뿐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근로감독관과 담당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피고나 하청업체 관계자들의 진술조서, 임의로 제출받은 각종 원·하청 내부문서들을 검찰청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으로 확보한 것들이다. 원고들의 수차례에 걸친 문서제출명령신청에 피고는 문서 내용이 파견관계 입증과 관련이 없다거나, 이미 폐기 혹은 수사기관에 제출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등 갖가지 이유로 기각을 구했고, (재판부 변경 전) 법원은 피고의 주장을 많은 부분 받아들였다. 또한 증인들은 소극적인 답변태도로 일관했다.

만약 불법파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진행됐더라도 담당검사가 문서송부촉탁에 응하지 않았다면 판결 결론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다른 사건들에서도 증거수집을 수사기관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사건과 같이 증거가 구조적으로 편재된 노동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효과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같은 대안적 증거수집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각주>
1) 주식회사 케이티앤지의 사내도급(지원설비 운전 등) 근로자들이 파견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로, 설시한 법리 자체는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판결)과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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