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두 번의 칼럼에서 우리는 네트워크 사업 구조에서 제기되는 두 가지 핵심 개념, 즉 “상대적 사업 개념”과 “연대책임”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노동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종속” 개념을 재검토하는 논의와 연결된다.

전통적으로 노동법에서 종속은 자유와 반대말이었다. 자유노동은 민법이나 상법의 대상이었고, 노동법은 종속노동만 대상으로 삼았다. 이때 말하는 종속은 공장제 노동을 모델로 하는 개념이다. 사용자는 지시하고 감독하고 징계한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지시권에 종속된다. 이러한 분업 구조에서 근로자는 사유가 금지된 채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일한다. 성과에 대한 책임은 원칙적으로 노동과정을 구상하고 관리하는 사용자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네트워크 사업에서 종속이 발현되는 양상은 이와 다르다. 플랫폼 노동을 예로 들어 보자. 물론 네트워크 사업의 종속성 문제는 비단 플랫폼 노동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플랫폼 노동은 이 문제를 고찰함에 있어 가장 전형적인 사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직접 지시를 하지도 않는다. 플랫폼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작업정보를 전달할 뿐이다. 근로자는 정보에 반응해 미션을 수행한다. 형식상 플랫폼은 사용자가 아니라 메신저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고, 근로자는 플랫폼에 고용돼 종속노동을 수행하는 임금근로자가 아니라 자기의 계산으로 자유노동을 수행하는 자영근로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 특고”의 노동은 온전한 의미에서의 자유노동이 아니다. 반대로 플랫폼이 지배하는 정보 네트워크에 종속돼 있다. 근로자는 네트워크 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자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예를 들어 플랫폼 근로자는 자기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서비스의 가격은 플랫폼이 결정한다. 플랫폼 근로자는 누구에게 서비스를 제공할지 선택하지 못한다. 플랫폼이 전달하는 작업정보 속에 이미 고객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근로자는 공장 근로자와 달리 정해진 근로시간과 근로장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이 전달하는 작업정보 속에 이미 시간과 장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과 장소가 매번 달라질 뿐이다.

플랫폼 근로자는 계약의 내용(가격)을 결정하지 못하며, 계약의 상대방(고객)을 선택하지 못하며, 계약의 이행방법(시간과 장소)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자유노동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들이다. 그렇다면 이 근로자는 과연 스스로의 계산과 위험으로 영업하는 자영근로자인가, 아니면 플랫폼에 종속돼 일하는 임금근로자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과거의 종속성 개념으로도 어느 정도는 답할 수 있다. 플랫폼이 앱을 통해 작업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지시”에 해당하며, 실시간 위치추적 시스템을 통해 근로자의 동선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감독”에 해당하며, 경우에 따라 플랫폼 접속을 제한하거나 “콜”을 제한하는 것은 “징계”에 해당한다.

둘째, 입증책임을 전환함으로써 문제를 풀 수 있다. 지금은 근로자가 임금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하고, 입증하지 못하면 자영근로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플랫폼 근로자는 자영근로자의 기본 속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근로자는 자영근로자가 아니라는 점만 입증하면 된다고 해야 한다. 그러면 임금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은 사용자가 입증해야 할 것이다.

셋째, 네트워크 모델의 종속성 개념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공장제 모델의 종속성이 '지시-종속성'이라면, 플랫폼 노동의 사례에서 추출할 수 있는 네트워크 모델의 종속성은 '제어-종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장제 모델의 근로자가 풀어지면 조이는 나사와 톱니바퀴라면, 네트워크 모델의 근로자는 방전되면 충전하는 스마트폰이다. 혹은 디지털 정보 네트워크에 의해 제어되는 자율주행 자동차다. 오늘날의 근로자는 제시된 목표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경로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프로그래밍되는 존재로 간주된다. 오늘날의 기업은 타율적 착취보다 자율적 착취가 훨씬 더 성과가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네트워크 모델에서 종속은 더 이상 자유의 반대말이 아니다. 종속은 자유와 섞여 있다. 이 새로운 종속을 계속해서 노동법의 기초로 삼을 수 있기 위해서는 노동법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노동의 구체적 경험에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