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징용노동자 피해배상 문제와 수출규제·경제전쟁 등 한일 간의 갈등과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이른바 진보세력 안에서 많은 혼동이 존재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대외적으로 한일 갈등을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 문제 ‘위주로’ 바라보면서 문재인 정권의 반일·반아베 캠페인을 지지하거나 대내적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정치검찰을 개혁할 적임자로 보면서 그의 임명을 지지한다.

조국 후보자의 장관 임명 문제부터 짚어 보자. 이 문제를 수구적인 자유한국당과 개혁적인 더불어민주당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바라보는 한 답은 뻔하다. 조국 후보자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지만 그를 낙마시키는 것은 수구세력을 도와주는 일이고 개혁을 후퇴시키는 일이므로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낡은 개발독재 시대의 프레임을 자본주의가 전면화하고 그 모순이 곪아서 폭발하기 직전에 있는 지금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심한 시대착오다.

정의당은 지난 7일 오전 페이스북에 심상정 대표가 조국 후보자에 대해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겠다”며 사실상 임명 찬성 입장을 밝히는 동영상을 올렸다. 이 동영상에 대해 찬성하는 측에서는 “고 노회찬 의원은 흠결이 없어서 조 후보자가 후원회장을 했을까” “꼭 나란히 가지 않아도 개혁을 위해서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댓글을 올렸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청년세대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던 정의당이 청년의 가슴을 후벼판다” “이것이 정의라면 역대 정권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이것은 또 다른 적폐”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씨는 7일자 <경향신문>에서 이런 글을 썼다.

“진보·보수, 좌파·우파 가릴 것 없이 모두 부패하고 무능한 참담한 시대 (…) 조국 사태는 강남 좌파와 586 엘리트가 오랫동안 감춰 온 위선과 욕망의 민낯을 드러냈다 (…) 대한민국 1%가 된 엘리트는 (…) 사회 각 분야의 엘리트가 촘촘하고 끈끈하게 밀어주고 당겨 주면서 ‘이익동맹’을 구축한다. 강남 좌파도 기득권 동맹의 세련된 버전일 뿐이다 (…) 군사독재에 맞서던 20대의 용기도 없고, 개혁을 외치던 30대의 열정도 없다. 공적 마인드는 약해지고 사적 욕망은 커졌다. 사적 네트워크로 얽히고설키다 보니 ‘아는 사람’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인데 부끄러움도 없다. 이미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도 개혁의 주체인 양 착각하고 있다 (…)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자유한국당에는 ‘자유’가 없고, 바른미래당에는 ‘미래’가 없고,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는 위선의 시대다.”

현실에 부합하는 대립 프레임은 낡아빠진 독재와 민주의 대립도 아니고 그것의 대안이라고 자칭하는 보수(수구의 포장)와 진보(자유주의의 포장)의 대립도 아니다. 현실 사회관계에 부합하는 정치적 대립관계는 힘겹게 노동하며 경제·문화·사회·정치 등 총체적으로 소외·억압돼 있는 노동자·민중과 이들을 지배·착취·수탈·억압하고 있으면서, 노동자·민중을 위하는 체 위장하고서 거짓과 위선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부르주아 세력과의 대립이다. 1대 99가 아니라 10% 부르주아대 90% 노동자·민중의 대립이며, 부르주아에 포섭된 노동귀족층까지 기득권층에 포함하면 20대 80의 대립이다.

한일 간의 갈등은 어떤가. 일제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지 않고 징용노동자 배상에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아베정권은 규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반일·반아베 캠페인이 어떤 맥락 안에서 이뤄지는지 속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조국 임명 문제와 비슷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한일관계의 틀이 이미 크게 달라졌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이 일제 식민지 시대가 아님은 말할 나위도 없고, 지금의 한일관계는 한일협정을 맺었던 1965년 당시의 그것도 아니다. 그때 이후 한동안 한일관계는 경제적 종속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제적 종속관계는 1980년대 말 한국의 3저 호황과 90년대 초 일본의 장기복합불황을 거치고 2008년 선진자본주의권 대공황을 경과하면서 대등한 경쟁관계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동남아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 순방은 아세안 나라들을 한국 독점자본의 경제영토로 삼겠다는 프로젝트다. 문 대통령은 태국에서는 “태국은 한국전쟁 참전국으로서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라고 강조하면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체결했고, 미래산업 분야뿐 아니라 국방과 방산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미얀마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지원해 준 5만달러의 쌀,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친미·반공을 강조했고, 미얀마 대통령은 “우리는 미얀마가 포함된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한국의 신남방정책을 열렬히 환영한다.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돼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을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이것을 자본독재 정권은 국익신장이라고 포장한다. 그러나 그것의 실체는 남한 독점자본의 경제영토 확장이며 아제국주의적 진출이다.

이런 한일 간 제국주의 패권쟁탈전의 맥락 속에서 수출규제·경제전쟁과 영토·안보분쟁이 격화하고 있고, 과거사 분쟁과 역사전쟁도 격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부합하는 정치적 대립의 프레임은 무엇일까.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한일 모든 노동자와 한일 모든 제국주의 대립이다. 그런데 진보세력 일각에서는 한국 노동자로 하여금 자본에 예속된 상태에서 그 하위 파트너가 돼 일본 독점자본에 맞서 투쟁하자고 한다.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해외답사 최종편 항일·극일·초일, 도산에게 길을 묻다”라는 프로그램이 경향신문사 주최로 추진되고 있다. 이 진보언론은 바로 그런 길을 걷자고 선동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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