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서지윤 간호사 유족과 시민대책위원회는 진상조사 결과 발표 직후인 지난 6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의료원 책임자 처벌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제정남 기자>
올해 1월5일 "병원 사람의 조문을 받지 마라"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된 서지윤(사망당시 29세) 서울의료원 간호사의 죽음이 직장내 괴롭힘에서 비롯했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족은 유사한 죽음 재발을 막기 위해 간호인력 노동환경 개선과 책임자 처벌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왜 "병원 사람 조문 받지 말라" 유서 남겼나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임상혁)는 지난 6일 오전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은 서울의료원 경영진이 직원들의 권리와 안전을 무시한 채 외형적 성장과 성과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반한 직장내 괴롭힘에 의해 숨졌다"고 밝혔다. 진상조사 활동 6개월 만의 결론이다.

진상대책위에 따르면 서지윤 간호사는 2015년 3월 서울의료원에 입사했다. 같은해 7월부터 지난해 12월16일까지 102병동에서 일했다. 고인이 포함된 근무조는 저녁·밤·휴일 근무가 많아 통상 1년 주기로 순환배치를 한다. 그런데 서 간호사는 2년 이상 일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 간호사들보다 노동강도가 월등히 높았다. 지난해 고인의 총 근무일수는 217일로 동기 19명 평균인 212일보다 많았다. 야간에도 동기들(76일)보다 많은 83일 근무했다. 고인은 102병동 근무 당시 잦은 근무일정 변경과 야간근무 투입으로 괴로움을 주위에 호소했다.

병원은 사직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들게 일한 고인을 지난해 12월 간호행정부서로 발령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기피부서로 통하는 곳이다. 102병동 관리자들은 부서이동을 압박하기 위해 고인과 여러 차례 면담을 했다. 그가 간호행정부서에서 일한 짧은 기간 중에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부서 사무실에서 개인 컴퓨터나 책상 같은 필수 사무용품조차 받지 못한 채 일했다. 숨지기 전까지 이 부서에서 일한 20일 중 세 차례나 당일병동에 파견됐다. 당일병동은 환자가 하루 입원해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는 공간이다. 평소에는 근무경력 20년의 주임간호사가 배치됐다. 간호행정부서 간호사가 당일병동으로 파견을 나간 경우는 지난 7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진상대책위는 서 간호사 같은 사례가 서울의료원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직원 2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직원들의 지난해 연차휴가 사용일은 1.6일에 불과했다. 여성휴가(생리휴가) 사용일은 0.01일, 병가 사용일은 1.19일에 그쳤다. 언어폭력을 경험한 간호사 비율은 17.8%, 괴롭힘을 당한 비율은 18.8%였다.

"권력화된 서울의료원 시스템 근본개선 필요"

직장내 괴롭힘 예방 위한 조례 제정 권고


진상대책위는 서 간호사 죽음 진상과 실태조사를 근거로 서울의료원에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임상혁 위원장은 "적정범위를 벗어난 괴롭힘이 있었고, 우월적 지위 문제로 사건이 불거졌고, 노동환경도 좋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며 "서울의료원을 관리·감독하는 서울시는 권력화되고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서울의료원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대책위는 유족에 대한 서울시장의 사과, 서울의료원 인적쇄신·조직개편, 직장내 괴롭힘 서울시 조례 제정,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 괴롭힘 실태조사 등 34개 권고안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달 2일 유족과 진상대책위 면담에서 "권고안 3개월 이내 실행"과 "서 간호사 추모비 건립"을 약속했다.

유족과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는 진상대책위 발표 직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고안 전면이행과 서울의료원 관계자 징계를 서울시에 촉구했다. 고인의 동생 서희철씨는 "누나가 죽은 지 8개월이 지났지만 가족 삶의 시계와 감정은 1월5일에 머물러 있다"며 "죽음의 진실이 확인된 것에 따른 책임자 처벌과 누나 같은 피해자가 절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

시민대책위는 "서울시가 권고안을 100% 수용할 의지가 있다면 이행계획과 이행감독 과정에 시민대책위 관계자를 참여시켜야 한다"며 "서울의료원을 죽음의 일터로 만든 병원 경영진은 즉각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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