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금융기관이 자신들이 번 돈을 파견·용역노동자의 복지향상에 쓸 준비를 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을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에게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관련법 개정에 이어 금융권 노사가 이 같은 내용에 합의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른 업종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노사 "수혜범위 파견·용역노동자까지 확대"

8일 금융노조에 따르면 한국기업데이터 노사는 지난달 27일 노사협의회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도급·파견노동자에게 쓰기로 합의했다. 세부적으로 △직원과 도급·파견노동자 복지증진을 위해 사내근로복지기금 기본재산의 20% 범위 내에서 사용하고 △총액의 25% 이상으로 도급노동자·파견노동자를 지원하며 △올해 9월16일 이전에 지급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회사는 지난달 30일 파견노동자 58명에게 휴가비 35만원을 줬다. 이달 9일 본사 시설관리·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 180여명에게 상품권 30만원을 지급한다. 윤주필 노조 기업데이터지부 위원장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비정규직에게 쓰면 단기적으로 정규직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직급과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한 가족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며 “양극화 해소가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 상황에서 회사 대표의 공감과 이해가 합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달 19일 “지부 노사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수혜범위를 파견 및 용역근로자들에게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2017년 10월에는 근로복지기본법 시행령이 개정돼 원청이 파견·용역노동자 복리후생에 사내근로복지기금의 기본재산 총액 20%까지 쓸 수 있게 됐다.

산업은행 노사는 지난해부터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비정규직에게 쓰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기금 일부를 올해부터 비정규직에게 쓰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최근 4억3천만원을 들여 파견·용역노동자 530여명에게 1인당 80만원 상당의 복지혜택을 지원했다. 김대업 노조 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현행법에 따라 복지기금협의회가 5년마다 정하는 금액으로 파견·용역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데 이 주기가 지나치게 길다”며 “산별 노사 차원에서 주기를 좁히는 쪽으로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극화 해소 바람, 다른 산업으로 확대할 듯"

시중은행에서도 구체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노조 신한은행지부는 이달 2일 시작된 노사협의회에 관련 안건을 제출했다. 최용철 지부 수석부위원장은 “산별 합의 취지를 따르기 위해 사용자측에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파견·용역노동자에게 사용하자고 제안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하고 있는데 기본재산을 어느 정도 써야 정규직 복지도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합원들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재영 노조 금융결제원지부 위원장은 “이달 말 열릴 예정인 노사협의회에 안건을 제출하기 위해 파견·용역노동자 복지실태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별 노사합의 이전부터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비정규직을 지원했던 곳도 있다. 씨티은행 노사는 지난해 4월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파견·도급노동자 1천100여명에게 1인당 30만원의 상품권을 지급했다. 은행권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 4월에도 1인당 22만5천원의 상품권을 줬다. KB국민은행 노사는 올해 노동절을 맞아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도급·파견노동자들에게 1인당 12만5천원의 복지비를 지원했다. 향후 150억원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도급·파견노동자들에게 쓴다.

금융권 사내근로복지기금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이 각각 1천800억원과 2천500억원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유주선 노조 사무총장은 "여러 지부들이 모범적인 사례를 구축해 금융권에서 시작된 양극화 해소 바람이 다른 산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용자협의회 관계자는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은행권에 쏠린 이익을 금융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과 나눠야 한다는 노조 제안에 사용자들이 공감해 올해 합의가 이뤄졌다”며 “사업장 사정에 맞게 세부 이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활발한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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