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20세기를 만든 세계화폐 달러, 자유무역, 군사동맹이 무너지고 있다. 이는 21세기 시민들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바다. 도대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마르크스의 붕괴이론이 그 답에 대한 힌트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르크스 경제이론은 경제와 제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지주와 소작농(농노) 또는 자본가와 노동자 같은 계급으로 나뉜 사회의 경제는 잉여노동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취득하는지 결정한다. 잉여노동은 생산에 소모된 자원들을 복구하고도 남는 노동으로, 농업경제에서는 지주 지대로, 산업경제에서는 자본가 이윤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제도는 이런 경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한다.

농업경제의 봉건제도는 지주의 토지 소유를 보장하며 농민을 토지에 묶어 두고 지주가 힘으로 지대를 취득하는 신분제로 구성돼 있다. 산업경제 기반의 자본주의 제도는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생산물을 배타적으로 취득하는 소유권, 시민이 자신의 의지로 임금노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자유주의, 신용과 통화에 관한 화폐 관련 경제기구들, 세계시장의 창출과 유지를 위한 무역·금융 등등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제도들로 이뤄져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이런 경제와 제도가 잘 작동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계급사회는 경제와 제도 양쪽에서 항시적 위기가 발생한다. 경제에서는 지배계급이 잉여노동을 충분하게 취득할 수 없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잉여노동 처분이 지배계급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잉여노동을 적게 취득하면 개발과 투자를 줄이거나 또는 잉여노동을 둘러싼 파괴적 경쟁 속에서 사회가 파탄난다. 농업경제에서는 지대율(토지당 지대)이 하락할 때, 산업경제에서는 이윤율(투자자본당 이윤)이 하락할 때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

지대율이나 이윤율은 지배계급이 가져가는 생산의 몫이 얼마인지, 그리고 지배계급이 투자하는 생산수단(토지나 자본재)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생산활동을 하는지(생산성)에 따라 결정된다. 보통 전자는 변화가 크지 않은 반면, 후자는 자연환경이나 기술사정에 따라 변화가 크다. 생산성은 농업경제에서는 토지의 비옥도가, 산업경제에서는 같은 자본재로 더 많은 생산을 해내는 기술이 변수다.

산업경제가 농업경제보다 생산성 발전에 뛰어난 이유는 인간의 노력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산업경제의 기술발전은 자본을 투자해 노동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개별기업의 기술혁신 경쟁에서 어떤 순간부터 충분히 노동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진보의 곤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은 개별기업이 이런 조건에서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즉 기술진보의 곤란 속에서 투자한 자본만큼 노동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자본생산성 하락이 발생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계급사회의 경제가 직면하는 근본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제도는 경제발전에 적합하지 않거나 경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때 위기가 발생한다. 봉건제는 토지생산성 하락에 대해 이를 주변영토 침략이나 농민 수탈로 대응하다 몰락했다. 자본주의 제도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윤율 하락 속에 대공황과 1·2차 세계대전으로 파국적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시작된 2차 산업혁명 기술진보와 케인스주의 제도혁신을 거치며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유효수요 이론을 중심에 둔 케인스주의는 국내에서 계급타협을 이뤄 대량생산된 상품을 소비할 대중의 소득수준을 개선했고, 금융이 투기 대신 실물투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금융규제를 강화했다. 달러-금본위제, 국제통화기금, 관세무역일반협정 같은 세계적 제도도 구축했다. 하지만 이런 혁신도 1970년대 이후 그 효과가 사라지는데, 기술진보의 곤란함이 가중되면서 이윤율이 하락하고 경제위기가 발발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이런 위기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었다. 금융규제를 없애 실물투자로 이윤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과잉자본이 세계적 수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금융 주도로 수익성 낮은 자본을 합병하고 폐기했으며, 중국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고, 저임금 지역으로 자본이동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들을 마련했다. 또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노동조합을 약화시켜, 고실업 상황을 노동자들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1990년대부터 정보통신혁명이 있었지만 이는 이전만큼 혁명적이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이윤율은 약하게 상승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하락했다.

이런 20세기 후반의 제도혁신도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한계에 부딪혔다. 정부는 민간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현금으로 바꿔 주고 기업부도나 실업 증가를 정부재정으로 막았다. 이런 제도로 지난 10년간 그럭저럭 버텼다. 하지만 최근의 사정은 이것이 지속 불가능한 제도임을 방증한다. 미국에서는 테이퍼링으로 불리는 부채축소 계획이 무산됐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달러 발권이익으로 땜질하던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으로 이를 해결해 보려다 세계 경제 침체만 심화시켰다. 4차 산업혁명이 이야기되지만 노동생산성 상승은 보고되지 않으며, 금융화도 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현금을 마냥 쌓아 두고 있다. 당연히 이윤율도 반등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충분한 잉여노동 추출에 실패하면서 동시에 위기에 적합한 제도도 만들지도 못하는 계급사회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300~400년에 걸쳐 진행된 서유럽 봉건제 붕괴는 그런 사례다. 자본주의 역시 지배계급의 잉여노동 추출과 이를 재생산하는 경제·정치제도의 역사적인 형태 중 하나다. 이런 붕괴 국면에서 선택은 세 가지다. 첫째, 20세기 초에 준하는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둘째, 위기에 적합한 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실패 중이다. 셋째, 계급사회의 경제와 제도를 변혁하는 것이다. 지배계급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경제와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혁은 실패한 사회주의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전제해야 한다.

마르크스 경제이론이 제시하는 사회 붕괴에 관한 분석을 다시 되새겨 봐야 한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오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