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캘리포니아 노동법 규정의 근본적 취지는 우선적으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것이며,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노동조건의 최저한을 보장함으로써 그들에게 존엄과 자존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 규정은 노동법을 준수하는 기업들이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는 경쟁기업과의 불공정한 경쟁에 시달리는 것을 방지하는 취지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이 규정은 보다 일반적인 공공적 목적을 가지는데, 이는 노동법 규정이 준수되지 않았을 때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생기는 부정적 효과를 결국 사회가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위 문구는 지난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노동자’와 ‘개인사업자’를 구분하는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설파한 것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위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빼앗을 뿐 아니라 노동법을 준수하는 기업들은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돼 결국 바닥을 향한 경쟁에 내몰리게 된다는 점을 갈파하고 있다. 나아가 이런 기업들을 방치하면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전체 사회로 전가된다는 사실도 꿰뚫고 있다.

위의 다이너멕스(Dynamex Operations West Inc.) 사건에서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기준은 상식에 부합하면서도 공정하다. 모든 노동자는 일응 노동법이 적용되는 노동자(employee)로 추정한다. 기업이 이 추정을 깨고, 자신이 사용하는 사람이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려면 (a) 그 노무제공자가 계약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업무 수행에 관해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통제나 지시를 받지 않고 (b) 그 사람의 노무제공이 그를 사용하는 기업의 통상적 사업 수행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며 (c) 독립 자영업으로 형성된 직종·직업·사업에서 그 노무제공자가 일해 온 방식과 동일하게 고객(기업)을 위해 일했다는, 세 가지 판단기준 모두에 부합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 대법원은 노동법의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러 판단기준을 제시하면서도 여기에 해당하는지 증명하는 책임은 결국 근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돌리고 있다. 미지급된 임금을 받기 위해서도, 부당해고를 구제받으려 해도, 노조로 인정받기 위해서도, 노동자가 자신이 법원의 기준에 부합함을 증명해야만 한다. 반면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법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기업이 그 증명 책임을 부담하도록 해서 법적 다툼에 따르는 비용을 기업이 부담하도록 전환시켰다.

올해 초 캘리포니아주 의회의 곤잘러스 의원은 다이너멕스 판결의 판단기준을 주 노동법으로 성문화하는 법안(일명 AB5)을 발의했다. 지난 수년간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운 우버(Uber) 기사를 비롯한 플랫폼 노동자들과 위장자영인 조직화에 힘쓴 전미서비스노조(SEIU)·전미화물운송노조(Teamsters) 등이 연대해 법안 통과를 위한 캠페인을 계속했다. 이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캘리포니아 노동연맹(California Labor Federation)은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동하는 1천200개 노조 조직의 연맹체다.

AB5 법안은 8월30일 캘리포니아주 상원 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전체 표결과 주지사 승인절차만 남겨 두고 있다. AB5 법안 통과는 캘리포니아주만의 사안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유사한 입법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서 법안 통과를 막거나 법안을 수정하려는 기업들의 로비가 치열하다. 그만큼 전국적 노동조합들과 노동단체들은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열띠게 벌여 대선주자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 냈다. 최근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법·경제학 교수 75명이 이 법안을 지지하는 연서명을 발표했다.

노동법 취지를 올바로 인식하는 법원, 노동자와 사회에 보다 공정한 입법을 위해 앞장서는 의원, 미조직·불안정 노동자 권리찾기를 든든히 뒷받침하고 전국적 정치적 사안으로 만들어 내는 노동조합의 역량. 지금 우리가 눈여겨보고 배워야 할 지점이 아닐까.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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