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본부 차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가 종료됐다. 과정과 결과에 대한 노동·시민·사회의 평가가 이뤄지겠지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세 가지를 먼저 짚고자 한다.

연금특위에서 왜 완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계의 ‘몽니’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2028년까지 40%로 낮아지는 축소지향적 스케줄을 당장 중단하고 보험료율을 10여년간 3%포인트 정도 올리자고 공식 제안했다. 노동계가 국민연금보험료 인상을 직접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으로 노후소득을 강화하자는 취지이면서 점진적 보험료율 인상으로 재정안정화에 기여하겠다는 의미다. 올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월액은 약 240만원이다. 보험료 상승을 금액으로 따지면 노사가 함께 월 7천200원씩 더 부담하게 된다. 2019년 최저임금인 시간당 8천350원보다 낮다.

그런데 재계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상승은 기업이 휘청일 정도의 부담”이며 “소득대체율을 올려 봤자 기업에 돌아오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1년여 시간 동안 진행된 사회적 대화에서 재계는 단 한 번도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공식적인 제안을 한 적이 없다. ‘소득대체율은 이래서 어렵고 보험료율은 저래서 어렵다’ ‘생각해 보니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도 있지 않냐’ ‘기재부가 재정적 부담이 가능하다고 하면 사각지대를 해소해 봐라’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뻔뻔한 태도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몽니는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내는 심술이라는 뜻이다. 이번 사회적 대화에서 재계가 보인 모습이 딱 몽니였다. 사회적 대화 주체로서,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책임감은 볼 수 없었다.

둘째 정치권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고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다수안과 공적연금체계를 현행제도 틀 그대로 방치하자는 소수안으로 정리됐다. 이를 기초로 정부와 국회는 국민연금법 개정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시민·사회진영은 우려가 크다. 사회적 합의가 불발됐다는 것을 핑계로 정부와 국회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조정을 건드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법 개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내년 총선에서 표가 되는지를 따지며 주판알을 튕길 것으로 보인다. 들리는 얘기로는 서로 핑계를 대면서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눈치싸움을 하는 상황이다. 만약 정치권이 연금개혁 결과를 얼렁뚱땅 묻어 버린다면 공적연금 강화를 통한 국민들의 노후생활 안정은 더 이상 꿈꿀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 강화를 ‘정규직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언론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몇몇 언론은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한 다수안을 정규직 이기주의로 표현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넓고 지나치게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저소득 가입자에게는 소득보장 효과가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후세대에게 부담되는 구조로 설계돼 있어서 보험료율을 20% 정도까지 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기초연금을 50만원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민연금을 민간보험 상품으로 인식하는 보수적 재정안정화론자들의 인식과 일맥상통한다.

왜곡된 시각을 가진 언론에 묻고 싶다. 공적연금 강화를 원치 않고,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원치 않는 주체는 노동자인가, 경영자인가, 민간보험 업자들인가? 저소득가입자 문제는 국민연금의 문제인가, 분절화된 노동시장의 문제인가? 보험료율을 20%까지 인상하자는 주장은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한가? 인구고령화가 어느 때보다 빨라지는 한국 사회에서 국민연금과 다르게 기여금이 하나도 없는 기초연금 50만원에 필요한 정부재정은 후세대 부담이 아닌가? 소득비례형 공적연금에 기초해 국민 다수의 노후빈곤을 해결하는 유럽 복지국가는 정규직 이기주의의 표본이라고 매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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