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9. 6. 27. 선고 2017가합583938 해고무효확인



1. 사실관계

피고는 전통 예술 관련 작품을 제작하고 상연하는 사업을 주로 하며, 상시 50여명의 근로자를 사용하고 서울 중구 정동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재단법인이다. 원고 갑은 2010년 1월11일, 원고 을은 2013년 3월20일 피고와 사이에 최초 출연계약을 체결한 이래 매년 피고와 출연계약을 거듭 체결해 2016년 12월31일까지 기악파트의 고수(장구·소리북) 단원으로 근무했다.

피고는 2016년 12월21일께 2017년 상설공연 출연자 모집공고를 하면서 무용과 타악부문에 대해서만 출연자를 모집했고, 원고들이 속한 기악부문 출연자는 모집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피고의 2017년 상설공연에 맡을 만한 배역이 없자 위 상설공연 오디션에 응시하지 않았고, 피고는 원고들과의 출연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들은 2017년 12월1일 피고의 갱신거절이 부당해고에 해당함을 이유로 서울중앙지법에 해고무효확인과 임금지급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2. 본 사건의 쟁점과 대상판결의 요지

첫째, 실효의 원칙 적용 여부다. 피고는 원고들이 2016년 말 피고의 2017년 상설공연을 위한 오디션에 응시하지 않았고 그동안 다른 직업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출연계약 종료 후 약 11개월이 지난 2017년 12월1일에야 이 사건 소를 제기했음을 근거로 실효의 원칙상 소가 부적법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① 약 11개월이 경과한 뒤 소 제기를 한 것을 두고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② 원고들이 피고와의 출연계약 종료 후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 활동을 한 것을 두고 피고에게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③ 원고들이 피고에게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피고가 신뢰했을 만한 사정도 존재하지 않는 점을 근거로 피고의 본안전 항변은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둘째,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피고는 원고들과 ‘출연’계약을 체결했고, 근무할 당시에도 다른 업무에 종사해 부수적인 수입을 얻었다는 이유를 근거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고, 소위 ‘프리랜서’ 등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법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 기준(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5다59146 판결 등)을 설시하며 ① 피고가 당해 연도 공연작품·연습·공연일정을 결정하고 원고들은 그 결정사항에 따라 배역을 담당하고 연습했던 점 ② 피고는 출근부를 두고 원고들의 출퇴근 기록을 관리했던 점 ③ 피고는 취업규칙에서 근태사항을 정하고,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연차휴가 등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점 ④ 원고들은 피고로부터 무대설치 및 의상을 제공받았던 점 ⑤ 원고들은 제3자로 하여금 원고들의 배역을 대행하도록 할 수 없던 점 ⑥ 원고들은 피고 상설공연 외에 다른 직무를 겸직할 수 없었고 사실상 피고에게 전속돼 있었다는 점 ⑦ 원고는 피고에게 매월 고정급과 퇴직금을 받았고, 피고는 위 고정급에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다는 점 ⑧ 원고들이 피고와 출연계약을 체결하면서 다른 업무에 종사하며 수입을 얻기도 했으나, 그 기간 및 수입액에 비춰 보면 부업 정도의 일을 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러한 사정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셋째, 원고들이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됐는지 여부다. 피고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4조1항 단서 1호에 따라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 해당해 원고들이 계약직 근로자일 뿐이며, 계약종료에 따라 당연퇴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용자가 기간제법 4조2항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반복갱신해 체결했으나 각 근로관계의 계속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 기준(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다255910 판결 등)을 설시하며, 아래 인정 사실을 근거로 피고가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해 1년 단위의 출연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은 피고와 최초 출연계약을 체결한 때부터 2년을 초과한 시점에 기간제법 4조2항에 따라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됐다고 판단했다.

① 피고는 매년 상설공연 브랜드 명칭만을 변경하면서 동일·유사한 공연을 계속 반복했고, 상설공연이 객관적으로 일정 기간 후 종료될 것이 명백한 사업이나 특정한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② 전통공연을 제작·상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피고의 사업 특성상 일시적으로 상설공연을 상연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상설공연을 전혀 상연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피고의 상설공연이 일정 기간 후 종료될 것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으며 ③ 피고의 상설공연과 원고들의 출연계약 기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④ 피고는 특정 상설공연의 완료를 위해 원고들과 출연계약을 체결했다기보다는 특정 상설공연의 일정과 무관하게 출연자를 1년 단위로 채용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⑤ 피고는 상설 공연사업뿐만 아니라 부수 사업(찾아가는 판소리 공연 등)을 했고, 원고들은 위 부수 사업에 참여했다는 점을 근거로 피고가 원고들이 상설공연에 출연하는 것만을 전제로 출연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넷째, 피고가 원고들을 해고했는지 여부다. 피고는 원고들이 2017년 상설공연에 맡을 만한 배역이 없자 오디션에 응시하지 않은 채 ‘스스로 짐을 싸서 나간 것’이므로, 피고가 원고들과의 계약갱신을 거절하거나 원고들을 해고한 사실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가 2017년 상설공연에 원고들이 맡을 만한 배역을 배정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원고들이 위 상설공연을 위한 오디션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했으므로, 이는 근로기준법상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피고가 원고들에게 해고 서면통지를 하지 않았고, 원고들을 해고한 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증거도 없으므로 2016년 12월31일자 해고는 근로기준법 23조1항 및 27조1항을 위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3. 대상판결의 의의 및 시사점

대상판결은 대법원이 정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 기준 및 기간제법 4조1항 단서 1호 적용에 관한 판단 기준을 충실하게 따랐다. 이러한 측면에서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다만 대상판결은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법’의 테두리에 있지 못한 예술단원들이 근로자라는 점, 피고가 정한 1년 기간의 ‘출연’계약서와 형식적인 오디션 절차는 기간제법 4조2항 적용을 회피하고자 함이었다는 점, 원고들의 배역을 없앤 뒤 원고들이 오디션을 보지 않았기에 해고한 바도 없다는 피고의 주장을 반박하며 근로기준법상 ‘해고’였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그간 예술계의 ‘관행’이라는 이름의 ‘위법’을 분명하게 지적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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